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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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구룡회(3)
구룡회(3)
팽가와 구가의 약혼이 진행됐던 이유는 간단하다.
구가면 사대세가 못지않은 명가였고, 두 집안에 혈족이 마침 비슷한 나이대였다.
나는 이변이 없다면 가주가 될 것이었고 팽가 쪽에서도 구가와의 혼약이라면 괜찮을 거라 판단했을 뿐이다.
중원의 세가라하면 혼약으로 입지를 늘리는 일도 많았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사고를 하도 쳐댔다는 게 문제지.
어릴 적 맺은 혼약은 별일이 없으면 유지될 터였으나.
산서 근 지방에 내 악소문이 퍼지고 무가의 혈족으로서 노력은커녕 방탕한 성정만 늘어나니 팽가의 입장에선 좋게 보이지 않았으리라.
물론 마지막 마무리를 한 것은 저 소녀에게 뱉었던 내 언행이었겠지만.
“어째서…!?”
소녀, 팽아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내가 더 궁금했다. 왜 그녀가 여기에 있는 걸까.
비교적 다른 지역보단 가깝지만 하북과 여긴 마차로 한참이나 오가야 하는 지역이다.
근데 뜬금없이 팽가주의 직계 혈족이 왜 구가에서 구룡회를 하는 산서 지역에 있을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여긴 무슨 일이지?”
내가 한 발짝 다가가니 팽아희가 움찔한다. 곧이어 팽아희의 호위라던 여비가 앞으로 나와 보호하듯 나섰다.
악당에게서 보호하듯 감싸는 모습이다. 악당이라면 악당인가?
호위의 등에 안정을 얻었는지 팽아희는 날 노려보며 말한다.
“일이 있어서 왔을 뿐이야, 산서가 다 너희 땅도 아닌데 내가 일일이 보고해야 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고.”
나는 그런 팽아희를 무시한 채 만두를 주문했다. 애초의 목적을 잊어선 안 되지.
가볍게 무시당한 팽아희가 오히려 당황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산서에 여행을 왔어도 껄끄러울 텐데 일로 왔다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귀찮은 일이겠지.
주문한 만두는 빠르게 나왔다. 차곡차곡 쌓인 만두가 탐스러웠다.
만두를 받아들고 휙 돌아서자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잠깐만.”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갤 돌렸다. 팽아희가 불안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그런 팽아희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무척이나 생뚱맞았다.
“...구가에서 내일 검대를 뽑는다고 하던데.”
“뭐?”
확실히 내일 구룡회 2일 차에서 검대원을 뽑을 것이다.
근데 그걸 왜 팽아희가 물어보는 거지?
질문하는 표정이나 말하는 투가 이상하기에 내가 되물었다.
“그걸 왜 물어보는데? 너도 참가하게?”
“거길 내가 왜 참가해! 그리고 왜 반말이야? 내가 한 살 더 많아!”
그랬었나.
“미안해 누님 깜빡했어.”
“...그렇게 갑자기 부르지마, 토할 거 같아.”
대체 뭐 어쩌라는거야….
좋지 못한 형식의 파혼이었으니 좋은 기억이 남았을 리는 없었다.
더 얘기해봐야 팽아희한테 안 좋을 테니 자리를 빨리 뜰 생각이었다.
“그래, 일 하러 왔던 놀러 왔던, 잘 있다 가.”
받아둔 만두가 식을까 발을 옮기려다 팽아희를 다시 쳐다봤다.
내가 휙 돌아보자 팽아희가 다시 움찔한다. 그녀는 내가 걸음을 옮길 때에도 여전히 내 등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 눈을 마주치다 나는 다시 발을 옮겼다.
******************
팽가의 소가주 팽우진은 남들이 평하길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팽가가 중원에 세워진 이래로 최고의 기재라 평가받는 사내였으나.
노력이라곤 딱히 하지 않았다.
꿈을 말하며 자신의 꿈은 가주는 아니라 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얘길 입에 달고 사는 사내였다.
무림맹이 주도하는 신룡관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팽가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소가주를 달기도 했다.
하지만 어딘가 붕 떠 보이고 구름 같은 사람인 것은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을 마저 보내기 전 팽우진은 팽아희에게 세가를 떠나고 싶다 말했다.
팽아희는 늘상 하던 농담마냥 그럼 잠깐 나갔다 오지 그러냐 말했다. 팽아희가 장난처럼 던진 말에 팽우진은 멍하니 서 있다 호탕하게 웃었고.
‘그렇네, 그렇게 하면 되겠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름 뒤, 팽우진은 ‘좀 놀다 올게요.’라는 짧은 서찰을 두고 종적을 감췄다.
소가주가 행방불명되자 팽가의 수색대가 바로 수색을 펼쳤으나, 팽우진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애꿎은 시간만 지나다 의뢰를 넣었던 개방에서 겨우 팽우진의 흔적을 작게 건질 수 있었다.
다름 아닌 팽우진이 산서로 향했다는 것.
이에 팽가의 가주는 그나마 팽아희의 말은 좀 들어먹으니 같이 가서 소가주좀 데리고 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냈으나.
팽아희 입장에선 자신의 꺼낸 말 때문이라는 죄책감 탓에 산서까지 향했다.
“...오라버니 일로도 머리가 아픈데 하필 저 녀석을 만나다니.”
팽아희에게 구양천은 보기 껄끄러운 얼굴이었다.
파혼 이후의 관계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만날 때마다 치고받았으니 애초에도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구양천은 항상 날이 서 있었고. 대상이 누군지 안 가리고 물어뜯는 광견이었다.
팽아희도 다소곳한 성격보단 팽가 특유의 거친 모습이 담겨있기에 구양천의 성격을 악착같이 받아쳤다.
그러다 이내 구양천이 선을 넘었고.
그걸 들은 숙부가 가주 대리라는 명목으로 약혼을 파투내면서 끝이 났다.
‘네까짓 게 뭐라고, 고작 첩의 자식이잖아!’
홧김에 뱉은 말인 것도 있고 자신도 못지않게 말로든 행동으로든 보복을 했으니 마음에 담아두진 않는다.
결과적으로 파혼을 하면서 구양천이 섣불리 뱉은 말로 인해 구가의 공식 사과와 정치적인 이점을 많이 챙겼기도 했다.
그저 팽아희는 고작 몇 년 사이 잠잠해진 것 같은 구양천의 모습이 신기했다.
“뭔가 많이 변한 눈이었어.”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저 오늘 기분이 좋은 날이라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 광견 같은 놈이 쉬이 철이 들었을 리 없다.
오히려 방금 모습은 철이 들었다기보단.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린 팽아희로선 그 모습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팽아희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 짓더니 여비에게 물었다.
“여비, 수색 현황은 어때, 뭐라도 좀 찾았어?”
“...쉽게 찾아내진 못하고 있으나, 소가주께서 신월현에 계신 것은 맞는 것 같다 합니다.”
“이 미친 오라비 같으니, 왜 하필 와도 여기로 온 거야.”
많은 지역을 놔두고 굳이 하필 산서로 뛰쳐왔는지 묻고 싶으나, 팽아희는 진작부터 팽우진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약간 먼 듯 가깝잖아?’ 같은 헛소릴 뱉을 게 분명했다.
그의 유별난 재능은 진작에 인정했을 부분이지만 성격은 차마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팽가의 핏줄임이 분명한데 다들 한 성격 하는 것에 비해 팽우진은 그런 성격과는 한참이나 먼 사람이었다.
“...짜증나 진짜.”
“조금 있으면 밤이 깊어질 겁니다. 우선 돌아가서 쉬시죠. 아가씨.”
여비의 말에 팽아희가 한숨을 푹 쉬더니 구양천이 사라졌던 방향을 힐끔 보고 등을 돌렸다.
“찾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두나.”
팽아희가 씩씩거리며 사라진 뒤 그들이 있던 만둣집에선.
“엣취…!”
만두를 잔뜩 집어 먹던 사내가 재채기를 연발했다.
이내 옷으로 콧물을 쓱쓱 닦더니.
“누가 내 욕을 하나? 왜 이렇게 간지럽데.”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만두를 집어 먹는다.
******************
날이 밝고 드디어 구룡회의 이 일 차, 구룡전(俱龍戰)이 열리는 날이 됐다. 정말 달갑지 않았지만 원래 시간이란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될 구룡전은 산서의 무수한 문파를 비롯해 구가의 방계 등이 참여한다.
물론 그 외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누구든 가능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긴 줄을 이어 서 있는 것이 전부 구룡전에 참가하는 이들이었다.
대체 검대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되고자 하는 걸까.
구가가 이 정도니 사대세가와 구파일방은 더하면 더 하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구파일방은 자기네 문파원으로만 뽑으니 이러진 않으려나.”
듣기론 그렇다는데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대련장엔 심판을 위해 어제 축제를 벌이던 구가의 검대원들이 서 있었다.
술을 그렇게 퍼마셨음에도 얼굴에 숙취로 힘든 기색 하나 없는 것이 애써 참는 것인지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뒤늦게 무연에게 물으니 한 시진 전엔 일어나 내공을 돌려가며 술기운을 빼기 위해 생고생했다는 모양이다.
그러게 좀 적당히들 마시지.
어제 만두를 먹어 팔팔한지 위설아가 힘찬 발걸음으로 어제와 똑같이 생긴 붉은 도포를 가져왔다.
나는 받아들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오늘만 하면 끝이지.”
“도련님! 오늘이 그거 하는 날이죠? 막 슈슉타탁 하는 거!”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해줄래…?”
“맨날 무연 오빠가 하는 거 있잖아요.”
아무래도 무연이 평소에 처소에서 몰래 하던 검술 수련을 얘기하나 본데.
아무리 그래도 슈슉타탁은 너무 축약되지 않았니?
“그거 되게 멋있어 보였는데. 언젠간 꼭 해보고 싶어요.”
‘...아마 질리도록 하게 될 텐데.’
위설아에겐 기구한 말일지 모른다.
나는 그녀가 어떤 일을 겪어가며 미래에 그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나 감히 예상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재능만 있다고 천마를 죽일 수 있으리라 보진 않는다.
신나하는 지금의 위설아를 보며 나는 말을 아꼈다.
옷을 갈아입고 대련 참관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시간의 여유가 좀 있어 천천히 가는 도중인데 누군가 큰 소리로 소리치는 것이 얼핏 들렸다.
“아니! 왜 안된다는 것이오!”
“...우, 우선 좀 진정하시고.”
“내가 시간이 없다니까 그러네! 이러다 잡히면 당신이 책임 질 거요?”
구룡전에 지원하는 이 같았는데 뭐가 문제가 있는지 따지는 거 같았다.
신분확인이 필수이기 때문에, 문제가 걸리는 이들은 저런 식으로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특이한 건 난동을 부리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구가의 무인들이 서 있을 텐데.
그들이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뭐, 알아서 하겠지.’
저런 이가 한두 명도 아닐 터인데. 어련히 잘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들린 말에 나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팽가인게 어때서! 신분확인만 되면 할 수 있다고 했잖소!”
“..아무리 그러셔도, 그…. 저희도 우선 입장이란 게 있으니 확인을 제대로 해봐야.”
“내가 뭘 더 보여줘야 하오? 아니 뭐 배에다가 ‘나 팽가 소가주요.’라고 적어 다니는 것도…. 아, 그렇게 하면 믿어주려나? 내가 지금 적겠소.”
“아아아! 진정하십시오!”
.....에?
“방금 뭐라 했지…? 소가주?”
...잘못 들었겠지?
구룡회(3)
팽가와 구가의 약혼이 진행됐던 이유는 간단하다.
구가면 사대세가 못지않은 명가였고, 두 집안에 혈족이 마침 비슷한 나이대였다.
나는 이변이 없다면 가주가 될 것이었고 팽가 쪽에서도 구가와의 혼약이라면 괜찮을 거라 판단했을 뿐이다.
중원의 세가라하면 혼약으로 입지를 늘리는 일도 많았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사고를 하도 쳐댔다는 게 문제지.
어릴 적 맺은 혼약은 별일이 없으면 유지될 터였으나.
산서 근 지방에 내 악소문이 퍼지고 무가의 혈족으로서 노력은커녕 방탕한 성정만 늘어나니 팽가의 입장에선 좋게 보이지 않았으리라.
물론 마지막 마무리를 한 것은 저 소녀에게 뱉었던 내 언행이었겠지만.
“어째서…!?”
소녀, 팽아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내가 더 궁금했다. 왜 그녀가 여기에 있는 걸까.
비교적 다른 지역보단 가깝지만 하북과 여긴 마차로 한참이나 오가야 하는 지역이다.
근데 뜬금없이 팽가주의 직계 혈족이 왜 구가에서 구룡회를 하는 산서 지역에 있을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여긴 무슨 일이지?”
내가 한 발짝 다가가니 팽아희가 움찔한다. 곧이어 팽아희의 호위라던 여비가 앞으로 나와 보호하듯 나섰다.
악당에게서 보호하듯 감싸는 모습이다. 악당이라면 악당인가?
호위의 등에 안정을 얻었는지 팽아희는 날 노려보며 말한다.
“일이 있어서 왔을 뿐이야, 산서가 다 너희 땅도 아닌데 내가 일일이 보고해야 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고.”
나는 그런 팽아희를 무시한 채 만두를 주문했다. 애초의 목적을 잊어선 안 되지.
가볍게 무시당한 팽아희가 오히려 당황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산서에 여행을 왔어도 껄끄러울 텐데 일로 왔다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분명 귀찮은 일이겠지.
주문한 만두는 빠르게 나왔다. 차곡차곡 쌓인 만두가 탐스러웠다.
만두를 받아들고 휙 돌아서자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잠깐만.”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갤 돌렸다. 팽아희가 불안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그런 팽아희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무척이나 생뚱맞았다.
“...구가에서 내일 검대를 뽑는다고 하던데.”
“뭐?”
확실히 내일 구룡회 2일 차에서 검대원을 뽑을 것이다.
근데 그걸 왜 팽아희가 물어보는 거지?
질문하는 표정이나 말하는 투가 이상하기에 내가 되물었다.
“그걸 왜 물어보는데? 너도 참가하게?”
“거길 내가 왜 참가해! 그리고 왜 반말이야? 내가 한 살 더 많아!”
그랬었나.
“미안해 누님 깜빡했어.”
“...그렇게 갑자기 부르지마, 토할 거 같아.”
대체 뭐 어쩌라는거야….
좋지 못한 형식의 파혼이었으니 좋은 기억이 남았을 리는 없었다.
더 얘기해봐야 팽아희한테 안 좋을 테니 자리를 빨리 뜰 생각이었다.
“그래, 일 하러 왔던 놀러 왔던, 잘 있다 가.”
받아둔 만두가 식을까 발을 옮기려다 팽아희를 다시 쳐다봤다.
내가 휙 돌아보자 팽아희가 다시 움찔한다. 그녀는 내가 걸음을 옮길 때에도 여전히 내 등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 눈을 마주치다 나는 다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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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가의 소가주 팽우진은 남들이 평하길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팽가가 중원에 세워진 이래로 최고의 기재라 평가받는 사내였으나.
노력이라곤 딱히 하지 않았다.
꿈을 말하며 자신의 꿈은 가주는 아니라 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얘길 입에 달고 사는 사내였다.
무림맹이 주도하는 신룡관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팽가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소가주를 달기도 했다.
하지만 어딘가 붕 떠 보이고 구름 같은 사람인 것은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을 마저 보내기 전 팽우진은 팽아희에게 세가를 떠나고 싶다 말했다.
팽아희는 늘상 하던 농담마냥 그럼 잠깐 나갔다 오지 그러냐 말했다. 팽아희가 장난처럼 던진 말에 팽우진은 멍하니 서 있다 호탕하게 웃었고.
‘그렇네, 그렇게 하면 되겠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름 뒤, 팽우진은 ‘좀 놀다 올게요.’라는 짧은 서찰을 두고 종적을 감췄다.
소가주가 행방불명되자 팽가의 수색대가 바로 수색을 펼쳤으나, 팽우진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애꿎은 시간만 지나다 의뢰를 넣었던 개방에서 겨우 팽우진의 흔적을 작게 건질 수 있었다.
다름 아닌 팽우진이 산서로 향했다는 것.
이에 팽가의 가주는 그나마 팽아희의 말은 좀 들어먹으니 같이 가서 소가주좀 데리고 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냈으나.
팽아희 입장에선 자신의 꺼낸 말 때문이라는 죄책감 탓에 산서까지 향했다.
“...오라버니 일로도 머리가 아픈데 하필 저 녀석을 만나다니.”
팽아희에게 구양천은 보기 껄끄러운 얼굴이었다.
파혼 이후의 관계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만날 때마다 치고받았으니 애초에도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구양천은 항상 날이 서 있었고. 대상이 누군지 안 가리고 물어뜯는 광견이었다.
팽아희도 다소곳한 성격보단 팽가 특유의 거친 모습이 담겨있기에 구양천의 성격을 악착같이 받아쳤다.
그러다 이내 구양천이 선을 넘었고.
그걸 들은 숙부가 가주 대리라는 명목으로 약혼을 파투내면서 끝이 났다.
‘네까짓 게 뭐라고, 고작 첩의 자식이잖아!’
홧김에 뱉은 말인 것도 있고 자신도 못지않게 말로든 행동으로든 보복을 했으니 마음에 담아두진 않는다.
결과적으로 파혼을 하면서 구양천이 섣불리 뱉은 말로 인해 구가의 공식 사과와 정치적인 이점을 많이 챙겼기도 했다.
그저 팽아희는 고작 몇 년 사이 잠잠해진 것 같은 구양천의 모습이 신기했다.
“뭔가 많이 변한 눈이었어.”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저 오늘 기분이 좋은 날이라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 광견 같은 놈이 쉬이 철이 들었을 리 없다.
오히려 방금 모습은 철이 들었다기보단.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린 팽아희로선 그 모습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팽아희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 짓더니 여비에게 물었다.
“여비, 수색 현황은 어때, 뭐라도 좀 찾았어?”
“...쉽게 찾아내진 못하고 있으나, 소가주께서 신월현에 계신 것은 맞는 것 같다 합니다.”
“이 미친 오라비 같으니, 왜 하필 와도 여기로 온 거야.”
많은 지역을 놔두고 굳이 하필 산서로 뛰쳐왔는지 묻고 싶으나, 팽아희는 진작부터 팽우진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약간 먼 듯 가깝잖아?’ 같은 헛소릴 뱉을 게 분명했다.
그의 유별난 재능은 진작에 인정했을 부분이지만 성격은 차마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팽가의 핏줄임이 분명한데 다들 한 성격 하는 것에 비해 팽우진은 그런 성격과는 한참이나 먼 사람이었다.
“...짜증나 진짜.”
“조금 있으면 밤이 깊어질 겁니다. 우선 돌아가서 쉬시죠. 아가씨.”
여비의 말에 팽아희가 한숨을 푹 쉬더니 구양천이 사라졌던 방향을 힐끔 보고 등을 돌렸다.
“찾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두나.”
팽아희가 씩씩거리며 사라진 뒤 그들이 있던 만둣집에선.
“엣취…!”
만두를 잔뜩 집어 먹던 사내가 재채기를 연발했다.
이내 옷으로 콧물을 쓱쓱 닦더니.
“누가 내 욕을 하나? 왜 이렇게 간지럽데.”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만두를 집어 먹는다.
******************
날이 밝고 드디어 구룡회의 이 일 차, 구룡전(俱龍戰)이 열리는 날이 됐다. 정말 달갑지 않았지만 원래 시간이란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될 구룡전은 산서의 무수한 문파를 비롯해 구가의 방계 등이 참여한다.
물론 그 외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누구든 가능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긴 줄을 이어 서 있는 것이 전부 구룡전에 참가하는 이들이었다.
대체 검대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되고자 하는 걸까.
구가가 이 정도니 사대세가와 구파일방은 더하면 더 하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구파일방은 자기네 문파원으로만 뽑으니 이러진 않으려나.”
듣기론 그렇다는데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대련장엔 심판을 위해 어제 축제를 벌이던 구가의 검대원들이 서 있었다.
술을 그렇게 퍼마셨음에도 얼굴에 숙취로 힘든 기색 하나 없는 것이 애써 참는 것인지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뒤늦게 무연에게 물으니 한 시진 전엔 일어나 내공을 돌려가며 술기운을 빼기 위해 생고생했다는 모양이다.
그러게 좀 적당히들 마시지.
어제 만두를 먹어 팔팔한지 위설아가 힘찬 발걸음으로 어제와 똑같이 생긴 붉은 도포를 가져왔다.
나는 받아들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오늘만 하면 끝이지.”
“도련님! 오늘이 그거 하는 날이죠? 막 슈슉타탁 하는 거!”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해줄래…?”
“맨날 무연 오빠가 하는 거 있잖아요.”
아무래도 무연이 평소에 처소에서 몰래 하던 검술 수련을 얘기하나 본데.
아무리 그래도 슈슉타탁은 너무 축약되지 않았니?
“그거 되게 멋있어 보였는데. 언젠간 꼭 해보고 싶어요.”
‘...아마 질리도록 하게 될 텐데.’
위설아에겐 기구한 말일지 모른다.
나는 그녀가 어떤 일을 겪어가며 미래에 그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나 감히 예상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재능만 있다고 천마를 죽일 수 있으리라 보진 않는다.
신나하는 지금의 위설아를 보며 나는 말을 아꼈다.
옷을 갈아입고 대련 참관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시간의 여유가 좀 있어 천천히 가는 도중인데 누군가 큰 소리로 소리치는 것이 얼핏 들렸다.
“아니! 왜 안된다는 것이오!”
“...우, 우선 좀 진정하시고.”
“내가 시간이 없다니까 그러네! 이러다 잡히면 당신이 책임 질 거요?”
구룡전에 지원하는 이 같았는데 뭐가 문제가 있는지 따지는 거 같았다.
신분확인이 필수이기 때문에, 문제가 걸리는 이들은 저런 식으로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특이한 건 난동을 부리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구가의 무인들이 서 있을 텐데.
그들이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뭐, 알아서 하겠지.’
저런 이가 한두 명도 아닐 터인데. 어련히 잘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들린 말에 나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팽가인게 어때서! 신분확인만 되면 할 수 있다고 했잖소!”
“..아무리 그러셔도, 그…. 저희도 우선 입장이란 게 있으니 확인을 제대로 해봐야.”
“내가 뭘 더 보여줘야 하오? 아니 뭐 배에다가 ‘나 팽가 소가주요.’라고 적어 다니는 것도…. 아, 그렇게 하면 믿어주려나? 내가 지금 적겠소.”
“아아아! 진정하십시오!”
.....에?
“방금 뭐라 했지…? 소가주?”
...잘못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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