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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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철의 여인. (1)
철의 여인 (1)
당문으로 가는 길은 지금껏 지나왔던 어느 길보다 편안했다.
마을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이기에 관리가 잘 된 탓이 아닐까.
덕분에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있던 호위들도 조금은 긴장을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니면 남궁이라는 명가와 같이 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뭐가 되었든 결과적으로 당문으로 가는 길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있잖아요. 언니, 처음에 약과를 먹었을 때 감자를 들고 있었는데, 감자가 너무 맛없어 보이는 거예요.”
“응.”
“약과는 그렇게 맛있는데…. 감자한테 미안하지만, 약과가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응.”
“감자는 왜 감자일까요….”
“응…. 응?”
쟤네만 빼고.
남궁비아 저 미친 것은 왜 자꾸 이쪽으로 오는 걸까.
볼 때마다 골머리가 아팠다.
‘도대체 왜 오는 거냐고.’
눈앞에 당당히 파란색 마차가 떡하니 있는데 굳이 왜 이쪽으로 와서 걷고 있느냐는 말이다.
와중에 남궁비아가 올 때마다 옆에 착 붙어서 짹짹거리고 있는 위설아도 말을 참 안 들었다.
언제 한 번 크게 혼내야지….
“웬일로 저 남궁 놈이 신경 안 쓰는 것도 이상한데.”
지금까지 내게 보인 행동으로 보아 남궁비아 옆에 딱 붙어서 졸졸 따라다닐 것 같은데 남궁천준은 그저 마차 안에서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이런 건 또 괜찮은 건가.”
미친놈의 생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덧 출발한 지 시간이 좀 지났는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남궁비아는 무인이니 그렇다 치고 위설아는 그리 오래 걸었음에도 팔팔한가 쉬지 않고 남궁비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역시 떡잎부터 다르다는 건가?
“...사실 그렇게 먹는데 안 팔팔한 것도 이상한 거 같은데.”
위설아가 먹는 양이 있는데, 그렇게 먹고 아주 조금 동글동글해진 걸로 끝나는 것이 먹으면서도 많이 움직여서 그런 게 아닐까.
사실상 저게 인체의 신비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위설아보다 덜 처먹었는데 옆구리에 살이 벌써 오르고 있는데 말이지.
인생….
한참을 그렇게 하늘만 보고 있으니 모여있는 이들 틈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당문의 깃발이 보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저 멀리 당(唐)이라는 글자가 적힌 녹색 깃발이 보인다.
인원수는 구가와 남궁의 이들을 합친 것보다 조금 안돼 보였다.
나는 급히 옷무새를 다듬었다.
아, 아까 낮잠 잤는데 머리 망가졌으려나.
이런 헛짓 때문에 명가와의 만남은 귀찮은 건데….
그래도 남궁 쪽과는 이미 남궁천준과 남궁비아가 선으로 지랄했던 탓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마차가 천천히 멈추고 나 또한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마차 밖으로 나가니 이미 남궁천준이 나와 당문의 이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천준.”
“잘 지내셨습니까, 당형.”
“요즘 좀 피곤한 일이라도 있나?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네.”
“여행이 길었으니 그럴 겁니다.”
“하긴, 멀리서 왔으니까. 설마 천준이 너까지 와줄 줄 몰랐어.”
“누님이 오기로 약속을 했다고 했으니…. 혼자 두면 불안하니까요.”
“아…. 비아 소저…. 음, 그럴 수 있지. 항상 느끼지만 천준은 남매끼리 우애가 참 좋아 보여, 우리 소열이는 날이 갈수록 성격이 사나워지는데.”
‘하하’ 전형적인 가식이 담긴 미소를 힘껏 뿌리더니 남궁천준이 내게 눈길을 돌린다.
“아! 구 소협! 이쪽으로 오시지요.”
뭘 언제 친해졌다고 저렇게 해맑게 날 부르는 거지?
속을 몰랐다면 티도 안 났을 모습에 체한 것 같이 속이 쓰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남궁천준과 인사하던 청년이 보인다.
청년은 이립이 넘었을 법한 얼굴에 독과 암기술에 능하다는 당가의 핏줄치고는 참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당가의 소가주 당주역.
현재의 별호까진 모르겠으나 마교의 출몰 이후 독대천군(毒代千君)이라 불릴 남자였다.
당주역은 나를 보더니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와 인사를 먼저 건넨다.
“구 소협이시군요. 구가에서도 저희 세가로 오신다는 말 전해 들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당주역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한참 어린 내게도 예를 취하는 모습에서 그가 가진 성품에 대해 아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맞춰 예를 취했다.
“구가의….”
이름을 말하며 소개를 하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남궁 놈들에게 구절엽이라고 해놓은 게 생각났다. 아 왜 그랬지.
하여튼 구절엽 이 새끼는 도움 안 돼요.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구가의 가주님을 대신하여 왔습니다. 참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대충 아버지가 하지도 않은 말을 꺼내며 슬쩍 넘어가려 했다.
다행히 당주역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웃음을 계속 머금고 있었다.
“구 가주님께선 일도 바쁘실 텐데 당연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당가에서 여는 작은 축제일 뿐인데,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겉치레식 인사가 끝날 무렵 멀리서 남궁비아 또한 다가왔다.
남궁비아는 당주역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나 비아야.”
“안녕하세요.”
“비아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구나. 몰라보겠어.”
“감사합니다….”
“아 참, 우리 소열이가 억지를 피웠다지? 미안하구나, 얘가 아직 철이 없어 네게 고생을 다 시켰구나.”
“아니에요…. 약속이었으니까요.”
“이해해주니 고맙다. 소열이가 많이 기다리는 듯하더구나, 천준이도 구 소협도. 밤이 늦기 전에 가는 게 좋을 듯하니 어서 출발하시지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드디어…. 당주역에 안내에 따라 고된 여행을 끝내고 사천당문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내 옆에 딱 붙어있는 남궁비아와, 옆에서 죽일 듯이 날 보고 있는 남궁 아들놈만 아니면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을 텐데…….
‘아…. 만두나 먹고 싶다.’
참 힘겹기 그지없었던 여행이 분명했다.
******************
사천당문(四川唐門).
사천 지역에 수 세기 동안 뿌리를 내린 정파 명가이자, 철과 독에 관해서는 중원 제일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날카로움에선 남궁세가.
패기에선 하북팽가.
섬세함으론 모용세가.
위 세 세가에 비해 당문은 모든 게 한 걸음 뒤에 있을지 모르나, 반대로 위 세 개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당문은 가지고 있었다.
당병전회라 불리는 것이 그 자신감으로 만들어진 것 중 한 가지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독문 무공은 암기술과 독공으로 유명하지만, 당문이 품고 있는 철을 다루는 기술은 가히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철을 다루길 중원 제일이라는 장인들이 만든 병기구.
이를 말하길 감히 예술이란 말을 쓰길 아깝지 않을 것이다.
당장 검존의 애병은 물론, 대대로 무림맹주의 검을 만들던 곳도 당문이며.
검을 사용한다는 구파일방과 다른 가문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것이 바로 당문의 손길이 담긴 검이었다.
‘..그걸 쉽게 주지 않지만 말이지.’
당문이 가진 이름값인지, 자부심인지 당문은 외인에게 쉽게 그들이 만든 병기구를 건네지 않는다.
돈으로 사려고 해도 무려 중원 사대세가가 돈이 궁해 팔게 될 상황이 생길 리 없을 것 같고.
아무튼, 당병전회란 결국, 일 년간 만들었을 당문의 완성도 높은 병기를 자랑하는 축제 같은 개념이다.
속에 들어있는 이유를 굳이 예상해 보자면, 우리 이 정도로 잘 만든다.
우리한테 잘하면 너희한테 이런 걸 줄 수 있다.
이런 게 아닐까.
실제로 가끔 당병전회 참석 도중 선보이던 물품 중 한 가지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 하는데.
나는 딱히 끌리는 일은 아니다. 물론 받게 되면 비싸게 팔긴 하겠지만.
당문에서 무슨 의도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런 걸 보여주는지 모르겠지만, 내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말이다.
‘비고를 찾을 준비를 해야지.’
사천에 온 목적을 잊지 말자.
금천연가, 금천연가의 비고를 찾기 위해 온 것이다.
당병전회가 끝나고 3일, 주어진 시간은 이 3일 뿐이다.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비고가 있는 지역과 주위 환경.
그마저도 정확한 얘기는 아니었다.
이 3일간 비고를 찾지 못한다면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정말 금천연가에 대한 정보를 개방에 가서 풀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복잡하구먼.’
“도련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요?”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끙끙거리며 머릴 싸매고 있으니 위설아가 내게 말 했다.
나는 당주역의 안내에 따라 사천당문으로 들어왔다.
전생에도 와본 것이지만,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했던 때와 달리 다시 본 당문의 위엄은 어마어마했다.
당장 예전에 구룡회 때문에 갔던 천일상가와 비교하면 당문이 더 클 정도였다.
‘역시 사대세가.’
정파의 뿌리라는 이들은 크기가 다르구만. 지금은 안내에 따라, 짐을 푼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금 둘러볼까 싶어 나온 참이었다.
어디 가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 조금은 둘러봐도 되겠지.
산책하러 나간다고 하니 바로 따라나온 위설아와 함께 조금 걷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걸으니 나무들로 채워진 숲이 나온다. 대체 얼마나 세가가 크면 숲이 있지?
찌륵 찌륵.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숲을 가득 채운 귀뚜라미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조금씩 보이는 반딧불에 여름이 다가왔음을 체감했다.
길을 따라 걸으니 인공적으로 만든 듯한 호수가 나왔다. 엄청나게 큰 크기는 아니지만, 작은 만큼 섬세하게 꾸며놓은 것이 느껴졌다.
빛을 밝히며 날아다니는 반딧불과 물 위에 떠다니는 연꽃이 감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나조차 아름답다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와아…!”
하물며 위설아는 어떨까, 역시나 위설아는 두 눈이 커짐과 동시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을까 잠시 고민했다.
결국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 예뻐요. 도련님!”
“그러게.”
위설아는 반딧불을 따라 춤을 추듯 살랑거린다. 나는 그 모습에 손등으로 잠시 눈을 비볐다.
가끔.
위설아가 전생의 모습과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지금의 위설아는 달을 품을 듯 빛나던 머리칼도, 서리 내린 듯 칼날을 지녔던 눈도 아니다.
밤하늘을 닮은 검은 머리칼에, 뭐가 그리 행복한 듯 항상 웃고 있는 얼굴이다.
그때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상황인데.
나는 어째서 지금의 위설아에게 그녀를 찾는 걸까.
스친 생각에 내가 픽하고 웃었다.
“뭘 생각해, 그저 우스운 미련이지.”
“네에?”
“아무것도 아니야, 슬슬 돌아가자 잘 시간이야.”
이쯤이면 구경 할 만큼 한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오늘은 좀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 위설아를 끌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누구십니까.”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놀란 표정을 하고 날 보고 있는 남궁비아와 함께 또 다른 이가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정체 모를 여인이 다시 내게 말한다.
“이곳은 외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입니다. 누구십니까?”
달빛이 비치자 그림자에 가려졌던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밤중에도 확실히 보이는 짙은 녹색의 한쪽 눈동자가 그 증거였다.
독비(毒妃) 당소열.
당문 역사상 최초의 만독불침(萬毒不侵)이자.
훗날 사천에 몰려들던 수천의 마인들을 홀로 막아냈던 철의 여인이다.
그리고.
전생에 내가 직접 죽인 여인이기도 했다.
철의 여인 (1)
당문으로 가는 길은 지금껏 지나왔던 어느 길보다 편안했다.
마을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이기에 관리가 잘 된 탓이 아닐까.
덕분에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있던 호위들도 조금은 긴장을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니면 남궁이라는 명가와 같이 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뭐가 되었든 결과적으로 당문으로 가는 길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있잖아요. 언니, 처음에 약과를 먹었을 때 감자를 들고 있었는데, 감자가 너무 맛없어 보이는 거예요.”
“응.”
“약과는 그렇게 맛있는데…. 감자한테 미안하지만, 약과가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응.”
“감자는 왜 감자일까요….”
“응…. 응?”
쟤네만 빼고.
남궁비아 저 미친 것은 왜 자꾸 이쪽으로 오는 걸까.
볼 때마다 골머리가 아팠다.
‘도대체 왜 오는 거냐고.’
눈앞에 당당히 파란색 마차가 떡하니 있는데 굳이 왜 이쪽으로 와서 걷고 있느냐는 말이다.
와중에 남궁비아가 올 때마다 옆에 착 붙어서 짹짹거리고 있는 위설아도 말을 참 안 들었다.
언제 한 번 크게 혼내야지….
“웬일로 저 남궁 놈이 신경 안 쓰는 것도 이상한데.”
지금까지 내게 보인 행동으로 보아 남궁비아 옆에 딱 붙어서 졸졸 따라다닐 것 같은데 남궁천준은 그저 마차 안에서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이런 건 또 괜찮은 건가.”
미친놈의 생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덧 출발한 지 시간이 좀 지났는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남궁비아는 무인이니 그렇다 치고 위설아는 그리 오래 걸었음에도 팔팔한가 쉬지 않고 남궁비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역시 떡잎부터 다르다는 건가?
“...사실 그렇게 먹는데 안 팔팔한 것도 이상한 거 같은데.”
위설아가 먹는 양이 있는데, 그렇게 먹고 아주 조금 동글동글해진 걸로 끝나는 것이 먹으면서도 많이 움직여서 그런 게 아닐까.
사실상 저게 인체의 신비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위설아보다 덜 처먹었는데 옆구리에 살이 벌써 오르고 있는데 말이지.
인생….
한참을 그렇게 하늘만 보고 있으니 모여있는 이들 틈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당문의 깃발이 보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저 멀리 당(唐)이라는 글자가 적힌 녹색 깃발이 보인다.
인원수는 구가와 남궁의 이들을 합친 것보다 조금 안돼 보였다.
나는 급히 옷무새를 다듬었다.
아, 아까 낮잠 잤는데 머리 망가졌으려나.
이런 헛짓 때문에 명가와의 만남은 귀찮은 건데….
그래도 남궁 쪽과는 이미 남궁천준과 남궁비아가 선으로 지랄했던 탓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마차가 천천히 멈추고 나 또한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마차 밖으로 나가니 이미 남궁천준이 나와 당문의 이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천준.”
“잘 지내셨습니까, 당형.”
“요즘 좀 피곤한 일이라도 있나?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네.”
“여행이 길었으니 그럴 겁니다.”
“하긴, 멀리서 왔으니까. 설마 천준이 너까지 와줄 줄 몰랐어.”
“누님이 오기로 약속을 했다고 했으니…. 혼자 두면 불안하니까요.”
“아…. 비아 소저…. 음, 그럴 수 있지. 항상 느끼지만 천준은 남매끼리 우애가 참 좋아 보여, 우리 소열이는 날이 갈수록 성격이 사나워지는데.”
‘하하’ 전형적인 가식이 담긴 미소를 힘껏 뿌리더니 남궁천준이 내게 눈길을 돌린다.
“아! 구 소협! 이쪽으로 오시지요.”
뭘 언제 친해졌다고 저렇게 해맑게 날 부르는 거지?
속을 몰랐다면 티도 안 났을 모습에 체한 것 같이 속이 쓰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남궁천준과 인사하던 청년이 보인다.
청년은 이립이 넘었을 법한 얼굴에 독과 암기술에 능하다는 당가의 핏줄치고는 참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당가의 소가주 당주역.
현재의 별호까진 모르겠으나 마교의 출몰 이후 독대천군(毒代千君)이라 불릴 남자였다.
당주역은 나를 보더니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와 인사를 먼저 건넨다.
“구 소협이시군요. 구가에서도 저희 세가로 오신다는 말 전해 들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당주역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한참 어린 내게도 예를 취하는 모습에서 그가 가진 성품에 대해 아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맞춰 예를 취했다.
“구가의….”
이름을 말하며 소개를 하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남궁 놈들에게 구절엽이라고 해놓은 게 생각났다. 아 왜 그랬지.
하여튼 구절엽 이 새끼는 도움 안 돼요.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구가의 가주님을 대신하여 왔습니다. 참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대충 아버지가 하지도 않은 말을 꺼내며 슬쩍 넘어가려 했다.
다행히 당주역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웃음을 계속 머금고 있었다.
“구 가주님께선 일도 바쁘실 텐데 당연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당가에서 여는 작은 축제일 뿐인데,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겉치레식 인사가 끝날 무렵 멀리서 남궁비아 또한 다가왔다.
남궁비아는 당주역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나 비아야.”
“안녕하세요.”
“비아는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구나. 몰라보겠어.”
“감사합니다….”
“아 참, 우리 소열이가 억지를 피웠다지? 미안하구나, 얘가 아직 철이 없어 네게 고생을 다 시켰구나.”
“아니에요…. 약속이었으니까요.”
“이해해주니 고맙다. 소열이가 많이 기다리는 듯하더구나, 천준이도 구 소협도. 밤이 늦기 전에 가는 게 좋을 듯하니 어서 출발하시지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드디어…. 당주역에 안내에 따라 고된 여행을 끝내고 사천당문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내 옆에 딱 붙어있는 남궁비아와, 옆에서 죽일 듯이 날 보고 있는 남궁 아들놈만 아니면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을 텐데…….
‘아…. 만두나 먹고 싶다.’
참 힘겹기 그지없었던 여행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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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四川唐門).
사천 지역에 수 세기 동안 뿌리를 내린 정파 명가이자, 철과 독에 관해서는 중원 제일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날카로움에선 남궁세가.
패기에선 하북팽가.
섬세함으론 모용세가.
위 세 세가에 비해 당문은 모든 게 한 걸음 뒤에 있을지 모르나, 반대로 위 세 개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당문은 가지고 있었다.
당병전회라 불리는 것이 그 자신감으로 만들어진 것 중 한 가지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독문 무공은 암기술과 독공으로 유명하지만, 당문이 품고 있는 철을 다루는 기술은 가히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철을 다루길 중원 제일이라는 장인들이 만든 병기구.
이를 말하길 감히 예술이란 말을 쓰길 아깝지 않을 것이다.
당장 검존의 애병은 물론, 대대로 무림맹주의 검을 만들던 곳도 당문이며.
검을 사용한다는 구파일방과 다른 가문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것이 바로 당문의 손길이 담긴 검이었다.
‘..그걸 쉽게 주지 않지만 말이지.’
당문이 가진 이름값인지, 자부심인지 당문은 외인에게 쉽게 그들이 만든 병기구를 건네지 않는다.
돈으로 사려고 해도 무려 중원 사대세가가 돈이 궁해 팔게 될 상황이 생길 리 없을 것 같고.
아무튼, 당병전회란 결국, 일 년간 만들었을 당문의 완성도 높은 병기를 자랑하는 축제 같은 개념이다.
속에 들어있는 이유를 굳이 예상해 보자면, 우리 이 정도로 잘 만든다.
우리한테 잘하면 너희한테 이런 걸 줄 수 있다.
이런 게 아닐까.
실제로 가끔 당병전회 참석 도중 선보이던 물품 중 한 가지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 하는데.
나는 딱히 끌리는 일은 아니다. 물론 받게 되면 비싸게 팔긴 하겠지만.
당문에서 무슨 의도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런 걸 보여주는지 모르겠지만, 내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말이다.
‘비고를 찾을 준비를 해야지.’
사천에 온 목적을 잊지 말자.
금천연가, 금천연가의 비고를 찾기 위해 온 것이다.
당병전회가 끝나고 3일, 주어진 시간은 이 3일 뿐이다.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비고가 있는 지역과 주위 환경.
그마저도 정확한 얘기는 아니었다.
이 3일간 비고를 찾지 못한다면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정말 금천연가에 대한 정보를 개방에 가서 풀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복잡하구먼.’
“도련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요?”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끙끙거리며 머릴 싸매고 있으니 위설아가 내게 말 했다.
나는 당주역의 안내에 따라 사천당문으로 들어왔다.
전생에도 와본 것이지만,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했던 때와 달리 다시 본 당문의 위엄은 어마어마했다.
당장 예전에 구룡회 때문에 갔던 천일상가와 비교하면 당문이 더 클 정도였다.
‘역시 사대세가.’
정파의 뿌리라는 이들은 크기가 다르구만. 지금은 안내에 따라, 짐을 푼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금 둘러볼까 싶어 나온 참이었다.
어디 가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 조금은 둘러봐도 되겠지.
산책하러 나간다고 하니 바로 따라나온 위설아와 함께 조금 걷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걸으니 나무들로 채워진 숲이 나온다. 대체 얼마나 세가가 크면 숲이 있지?
찌륵 찌륵.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숲을 가득 채운 귀뚜라미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조금씩 보이는 반딧불에 여름이 다가왔음을 체감했다.
길을 따라 걸으니 인공적으로 만든 듯한 호수가 나왔다. 엄청나게 큰 크기는 아니지만, 작은 만큼 섬세하게 꾸며놓은 것이 느껴졌다.
빛을 밝히며 날아다니는 반딧불과 물 위에 떠다니는 연꽃이 감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나조차 아름답다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와아…!”
하물며 위설아는 어떨까, 역시나 위설아는 두 눈이 커짐과 동시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을까 잠시 고민했다.
결국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 예뻐요. 도련님!”
“그러게.”
위설아는 반딧불을 따라 춤을 추듯 살랑거린다. 나는 그 모습에 손등으로 잠시 눈을 비볐다.
가끔.
위설아가 전생의 모습과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지금의 위설아는 달을 품을 듯 빛나던 머리칼도, 서리 내린 듯 칼날을 지녔던 눈도 아니다.
밤하늘을 닮은 검은 머리칼에, 뭐가 그리 행복한 듯 항상 웃고 있는 얼굴이다.
그때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상황인데.
나는 어째서 지금의 위설아에게 그녀를 찾는 걸까.
스친 생각에 내가 픽하고 웃었다.
“뭘 생각해, 그저 우스운 미련이지.”
“네에?”
“아무것도 아니야, 슬슬 돌아가자 잘 시간이야.”
이쯤이면 구경 할 만큼 한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오늘은 좀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 위설아를 끌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누구십니까.”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놀란 표정을 하고 날 보고 있는 남궁비아와 함께 또 다른 이가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정체 모를 여인이 다시 내게 말한다.
“이곳은 외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입니다. 누구십니까?”
달빛이 비치자 그림자에 가려졌던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밤중에도 확실히 보이는 짙은 녹색의 한쪽 눈동자가 그 증거였다.
독비(毒妃) 당소열.
당문 역사상 최초의 만독불침(萬毒不侵)이자.
훗날 사천에 몰려들던 수천의 마인들을 홀로 막아냈던 철의 여인이다.
그리고.
전생에 내가 직접 죽인 여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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