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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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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54회 작성일 24-09-2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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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 마검후(魔劍后). (3)

마검후(魔劍后) (3)

이는 과거 어느 태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싸늘히 식은 주검들로 빼곡하게 쌓인 산 중턱이었다.

정사 가를 것 없이 마인들 조차도 뒤섞인 연옥의 중앙, 마검후 남궁비아는 그사이 홀로 검을 든 채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마검후(魔劍后).]

내 부름에 남궁비아가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흰 뺨에 튀어있는 핏물 한 방울 탓인가 유독 고혹적으로 보인다.

감정이 하나도 들지 않은 어두컴컴한 눈동자.

눈을 마주 보고 있자니 보이는 것은 오로지 어둠뿐이었다.

[생존자가 네년뿐이구나, 다 죽인 건가?]

다른 무인을 제외하고 마인들에게 까지 보이는 잔혹한 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남궁비아의 검이 지나간 자리였다.

앞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남궁비아는 적과 자기편 상관없이 이 자리에서 다 죽인 것이었다.

그걸 보고 내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하였거늘, 무슨 개짓거릴 하는 거냐.]

내 목소리에 남궁비아가 피를 잔뜩 묻힌 검을 늘어뜨린 채 내게 다가온다.

남궁비아는 살기를 품지 않은 것 같으나, 함부로 알 수 없는 것이 남궁비아는 어느 때에도 살기를 품지 않는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감정에 흔들림이 없는 인간.

그래서 더 무서운 검수인 것이다.

남궁비아가 내 앞에 당도했다. 뺨에 묻어있던 핏물을 닦아내곤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어, 여기엔.]

[그렇겠지, 네년이 다 지워버렸으니까.]

휙. 남궁비아가 핏물을 털어내듯 빠르게 검을 휘두른다.

휘두른 방향으로 거센 풍압이 퍼져간다.

툭툭 검을 털며 남궁비아가 내게 물었다.

[교주께선 뭐라고 하셨어?]

[널 데려오라 하셨다, 보나 마나 미친년처럼 날뛰고 있을 거라고.]

[뒷말은, 네가 하고 싶은 말?]

[알아듣는 걸 보니 그럴 정신은 있나 보군.]

머리에 꽃만 안 달았지 남궁비아는 미쳐있었다. 그것도 다른 게 아닌 오로지 검에 말이다.

대충 휘둘러 핏물을 털어낸 검을 검집에 넣고 남궁비아는 발을 옮긴다.

내가 그걸 보며 한숨을 쉬었다.

[거기 아니다 마검후.]

[...어디지?]

[왼쪽.]

[아….]

[...거긴 오른쪽이다.]

몇 번의 지적이 있고서야 남궁비아가 제 길을 찾아간다.

못해도 이 자리에서 수백 명은 죽였을 고수라기엔 어딘가 맹한 구석이 있는 이였다.

그런 모습과 다르게 수십이 넘는 무인 틈으로 들어가 살벌한 검무를 펼치는 모습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괴리감이 있다.

마검후(魔劍后).

어찌 보면 남궁비아와 가장 잘 어울리는 별호가 아닐까.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남궁비아가 자리에 멈춰 섰다.

[저기 말이야.]

[뭐냐.]

[검존이라면 강하겠지?]

[...헛소리하는 걸 보니 역시 제정신은 아닌 거 같군.]

뒤따라 걷던 나도 따라 발을 멈췄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단호히 말했다.

[혹시 몰라 얘기하는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도록, 삼존은 교주님의 몫이다..]

[검존의 검은 어떨까.]

[아…. 이 미친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발을 옮겼다.

어쩐지 따라오는 인기척이 안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더니 남궁비아가 뭔가 혼자 중얼거리며 다른 쪽으로 가고 있었다.

[....]

붙잡아야 하나? 찰나의 고민을 했다.

땅에 널려있는 바위를 집어다 남궁비아에게 던졌다.

정확히 머리를 맞추기 위해 내기까지 담았다.

빠르게 날아간 바위는 남궁비아의 근처에서 반으로 갈라져 툭 하고 떨어졌다.

어느새 검을 뽑아 든 남궁비아가 나를 보고 있었다.

[싸울 거야?]

남궁비아의 표정에 감정이 담기는 순간은 이때뿐이다.

주위를 짓누르기 시작한 내기에 몸이 저릿저릿하게 울린다. 나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거기 길 아니다.]

[....아!]

내 말에 곧바로 검을 집어넣는다. 순식간에 주위를 잠식하던 내기 또한 사라졌다.

그제야 겨우 멀쩡히 길을 걷던 남궁비아가 또다시 멈칫한다.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다.

[뭐 하는 거냐?]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

[무엇을?]

[이쪽은 아무리 봐도 길이 아닌 거 같아.]

남궁비아는 그리 뱉더니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도약하고서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걸 보고 얼굴을 다시 쓸어내렸다.

[...거기 아니라고, 이 미친년아….]

나는 그 뒤로 하루도 안 걸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렇게 뛰어간 남궁비아가 목적지로 도착한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

내 외침에 모여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 남궁비아의 시선이 유독 무서웠다.

죽어도 저 미친년이랑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사대세가의 주축이라는 남궁의 이름? 아름다운 외모? 그런 건 다 부질없는 것이다.

저 미친년의 존재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도련님?”

무연이 대뜸 욕설과 함께 소리치며 나타난 날 보며 당황한 얼굴이었다.

나도 가능하면 입 꾹 다물고 버티고 싶었지만, 이건 무리였다.

와중에 남궁비아가 날 보며 물었다.

“이 일행의 주인이신가요.”

목소리만 들어도 식은땀이 난다. 대답을 해야 할까?

내 대답은 관심 없다는 듯 남궁비아가 내게 예를 취했다.

“남궁세가의 남궁비아라고 합니다. 혹시 폐가 되지 않는다면 사천까지….”

“안됩니다. 사천에 가지도 않고, 폐가 맞습니다.”

내 단호한 거절에 보고 있던 이들의 눈이 커진다.

남궁비아의 고개가 갸우뚱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럴까?

하기야 어디 가서 남궁세가라는데 거절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엄연히 할 말이 있었다.

“소저가 정말 남궁세가 소속인지도 확인이 되지 않고, 신원 불명의 무인을 함부로 일행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청백발의 머리칼과 입고 있는 청색 무복에 적힌 남궁의 이름만 봐도 그녀가 남궁세가의 인물이 맞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엄연히 이건 정론이었다.

절대로 안 받아줄 거다.

내 거절에 남궁비아는 ‘아….’라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무연이 이를 보고 다급히 전투태세를 갖추지만, 남궁비아는 그저 가만히 서서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모습에 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저 미친년이 설마….’

일순,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마치 땅이 아니라 검날 위를 걷는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칼날, 느껴지는 공기가 칼날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생에 남궁비아에게서 끊임없이 느낄 수 있었던 기운이다.

이윽고 천천히 남궁비아가 눈을 떴다.

동시에 저릿저릿한 내기가 전신에서 발산되었다.

이를 느낀 무연과 호위들은 동시에 검을 출수한다.

검날이 남궁비아에게 닿기 전, 남궁비아에게서 발산되던 내기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자신을 위협하는 다수의 검이 코앞이지만, 남궁비아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세가의 절기가 저 연약해 보이는 여인에게서 잠깐 비춰진 것이다.

“제가 아직 이걸 잘 다루지 못해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이뿐이나, 혹시 이 정도면 증명이 됐을까요.”

남궁비아는 자신이 남궁세가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토록 무식한 방법을 쓴 것이었다.

어찌 보면 보다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아마 여기 서 있던 무인들은 모두 그녀가 남궁세가의 직계임을 확신했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절기만큼 그들을 증명하는데 확실한 방법을 없을 테니까.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어마무시한 기운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무공을 사용하는 이와 저희는 ‘절대’ 같이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

다행히 남궁비아의 동행을 거절하고 다시 사천으로 가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의외로 남궁비아는 내 거절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겨우 한 건 해결한 건가?

정말 십 년 감수했다.

‘여기서 저 인간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

아군 적군 안 가리고 그저 검을 휘두르던 모습이 눈앞에 아직도 선했다. 남궁세가의 직계인 인간이 왜 혼자 여기서 돌아다니는 걸까.

“아…. 피곤하다 정말.”

마차를 타고 다녔던 지난 사흘보다, 방금 남궁비아와 마주한 고작 몇 분이 더 지치는 느낌이었다.

“도련님, 도련님!”

“왜 불러.”

문득 창밖을 보던 위설아가 날 불렀다.

위설아는 계속 마차 밖을 보고 있었다.

“계속 따라와요.”

“뭐가?”

뭐가 따라온다는….

위설아에 말에 싸늘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걸 확인 사살하듯 위설아가 대답한다.

“아까 그 예쁜 언니, 계속 따라오고 있어요.”

오 세상에 신이시여….

다급히 마차 밖을 확인하니 정말 저 멀리서 남궁비아가 따라오고 있었다.

‘미치겠네, 아까 끄덕인 게 그런 의미였나?’

안 받아주면 따라가면 된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마음 같아선 따라오지 말라고 쌍욕이라도 퍼붓고 싶지만, 그럴만한 명분까진 없었다.

‘사천에 안 간다고 말까지 했는데 대체 왜 따라오는 거야.’

가는 길이 같은가? 그럴 리가 없었다.

저 정신 나간 계집이 멀쩡한 길로 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 무시하자. 무시가 답이야.

문제는 이후 밤이 되고 야영을 할 때였다.

겨우 쓸만한 지형을 찾아 모닥불을 피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다른 모닥불 하나가 보인다.

다름 아닌 남궁비아였다. 그녀는 대체 어디서 잡아 온 것인가 개구리를 막대기에 꽂아 넣고 모닥불에 은은하게 굽고 있었다.

외모가 워낙 화려해서 그런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눈동자임에도 심하게 처량하게 보였다.

저건 정말 대놓고 나 따라가고 있어요 하는 꼴이었다.

대체 개구리는 또 어디서 잡아 온 거지?

애써 무시하고자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옮기니 위설아는 저번과 같이 만두를 들고 뛰어다니고 있다.

저번에 슬쩍 들으니 호위들이 위설아가 만두를 건네주는 시간만 되면 피로가 싹 풀린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조금은 공감되는 얘기긴 했다.

“도련님! 만두!”

위설아가 건네는 만두를 집어다 먹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만두를 먹으니 역시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입맛이 좀 돋는지 순식간에 만두 한 개가 사라졌다. 출출한 게 배가 덜 찼는지 좀 더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만두를 받기 위해 위설아를 찾는데.

“...와 저건 진짜 안 되는데.”

위설아가 어느새 남궁비아에게 가서 만두를 건네고 있었다.

남궁비아는 위설아가 건넨 만두를 보며 희귀하게 당황스러운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예쁜 언니도 이거 하나 먹을래요?”

“...아.”

나는 다급히 일어나 위설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위설아의 어깨를 잡아끌어 뒤로 당겼다.

“외인에게 뭐 하는 거야 지금.”

조금 화가 난 음성이라 그런가 위설아가 살짝 주눅이 든 기색이다.

“아니…. 이 언니 불쌍하게 개구리를 먹으려 하잖아요….”

“그냥 좀 먹고 싶었나 보지,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돌아가 있어.”

“네에….”

혼나서 그런가 시무룩한 표정의 위설아가 터벅터벅 돌아간다.

와중에 만두를 손에 든 남궁비아가 날 올려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따라서 오십니까?”

“그냥 길이….”

“길이 같다는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말을 미리 차단하니 순간 합죽이가 됐다.

“소저께서 남궁가의 자제분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근데…. 어째서 동행 허락을 안 해주셨나요?”

“그건 제 맘이죠, 남궁세가라고 무조건 들어줘야 할 이야기는 아니잖습니까.”

“아….”

“이해가 안 가는 게, 어째서 남궁가의 금지옥엽께서 먼 땅까지 혼자 가십니까?”

남궁비아에게 예를 차리려니 등골에 소름이 자꾸 돋지만, 억지로 삼킨다. 이 또한 필요한 일이리라…….

남궁비아는 만두를 들지 않은 반대 손으로 볼을 긁적거린다. 뭔가 머쓱해 하는 얼굴이었다.

“....출발은 분명 다 같이 했는데…. 제가 중간부터 길을 잃어서….”

그 말에 내가 차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같이 출발했을 사용인이 몇이고, 분명 마차를 탔을 텐데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지?

‘...전생에 기억이 없었으면 절대 이해 못 했겠는데.’

왼쪽 오른쪽도 똑바로 구분 못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마검후는 신이 내린 길치였으니까.

“저희는 사천을 가지 않습니다.”

“정말요…? 갈 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길은 찾지도 못하는 맹탕이가 쓸데없이 이쪽 감은 좋았다.

내가 헛기침을 한 번 뱉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든, 따로 오는 것까지 뭐라 말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정말 단지 그뿐이니 딱 거기까지만 해주십시오.”

이 정도만 말하면 되겠지. 이걸로 끝이다. 꼭 그래야 했다.

재빨리 자리를 뜨려는데 남궁비아가 날 불러세웠다.

“저기, 소협.”

“...왜요?”

“저는 남궁비아라고 합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남궁비아가 말없이 날 계속 처다본다. 뭐 어쩌라는 얘기지?

그렇게 침묵이 계속되다 남궁비아가 고개를 또 갸웃거렸다. 이윽고 뭔가 깨달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소개를 했으니, 소협께서도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싫….”

이름까지 알려주면 괜히 엮일 것 같다 싫다 하려 했지만.

스치듯 떠오른 방편에 남궁비아에게 말을 내뱉었다.

“...저는 구절엽이라고합니다.”

“예?”

“구가세가의 구절엽이요, 구절엽.”

남궁비아가 이내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기억하겠단 것 같았다.

...절엽아 미안하다.

....니 이름 좀 쓸게.

평생 미안 할 일 없을 것 같았던 구절엽에게 조금의 죄책감이 생긴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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