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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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마검후(魔劍后). (2)
마검후(魔劍后). (2)
위설아에 관해선 적당히 얘기를 끝낸 뒤, 우선 밤이 늦었기에 급히 요깃거리를 만들어 식사를 끝냈다.
며칠을 굶었는가 위설아의 입에 쉼 없이 음식이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당황해서 원래 저렇게 먹냐 물어보니.
시종들은 익숙한 듯, 원래 위설아는 저렇게 먹는다는 답변을 했다.
생각해보니까 첫날 감자를 계속 집어 먹던 게 원래도 잘 먹는 쪽이었나보다.
입이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몇 명분이 늘어난 것 같은 수준이라 중간에 들를 거리에서 이것저것 좀 많이 사가야 할 것 같았다.
계곡물에 달빛이 비친다.
야영을 위해 계곡 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그 탓인지 봄바람 평소보다 더 추워지는 날씨가 느껴졌다.
자시쯤 되니 슬슬 호위들이 불침번을 서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천막 주위에 마선부를 하나씩 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기로 주위를 계속 살펴봐야 하는 일이라 고된 일이었다.
달을 보며 앉아있자니 무연이 다가왔다.
“도련님 슬슬 들어가시지요, 날씨가 추워집니다.”
“아무리 추워도 호위들보단 내가 더 따뜻할걸.”
심법의 영향 탓에 지금도 시원하다 느낄 뿐 춥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모닥불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위설아가 천막에서 시종들에게 뭔가 받더니 촐랑거리며 뛰어온다. 위설아는 만두가 든 그릇을 들고 오고 있었다.
갑자기 웬 만두…?
김이 모락모락 한 것이 방금 찐 듯한 모양새였다. 대체 어떻게 여기서 저걸 찐 거지?
“언니들이 오빠들 나눠주래요!”
알고 보니 호위들 먹으라고 준비한 야식인가보다.
위설아가 하나씩 나눠주는데 그걸 보고 호위 놈들이 헤벌쭉한 미소를 짓는다.
위설아의 외모는 대단한 무기였다. 전생에 다 컸을 성인 때는 위설아와의 대련 중 얼굴에 넋이 나가서 대련에 패배한 놈도 있었는데, 지금이라고 좀 다를까.
이윽고 모두에게 만두를 돌린 위설아가 내 옆에 슬쩍 착석했다.
“도련님 건 큰 거로 가져왔어요.”
해맑게 웃으며 위설아는 만두 두 개를 내게 건넨다.
나는 만두를 받아들고 말했다.
“안 자도 되겠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일정이 정해져 있기에 내일은 해가 뜨자마자 출발해야 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잠을 자야 그나마 편할 수 있을 것이다.
“도련님도 안 주무시잖아요.”
“...나야 뭐.”
나는 조금의 내기라도 있기에 괜찮지만, 아직은 위설아가 무인이 아니기에 조금 힘들 수 있으리라.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몽글몽글하고 촉촉한 것이 역시 만두는 위대했다.
찬 바람이 슬슬 거세진다. 무연이 몸을 풀며 일어났다. 나 또한 슬슬 마차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위설아의 등을 살짝 밀었다.
“빨리 들어가, 내일 못 일어나면 버리고 갈 거니까.”
“힝…. 너무해요.”
“만두는 맛있었어.”
남은 만두를 한입에 집어넣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
“진짜 징그럽게 멀다.”
시간이 흘러 사천을 가기 위해 세가를 떠난 지 어느덧 나흘째가 되었다.
그동안의 일이라곤 낮에는 마차를 타고 밤에는 야영을 반복했다.
틈틈이 심법 수련도 겸했으나 딱히 이렇다 할 성장은 아니었다.
내공이란 게 애초에 뜬금없이 깨달음을 얻는다고 확 늘고 이런 것이 아니었으니 감내해야 했다.
“...가는 건 둘째치고 올 때는 또 어쩌지.”
아마 그때도 이렇게 걸리겠지. 그걸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은 길이 거칠어서 마차가 속도를 낼 수도 없는 상태였다.
덕분에 바깥 풍경을 질리도록 보고 있었다.
“도련님!”
“왜 불러.”
“저기 봐요. 저기! 다람쥐예요!”
위설아에 말을 따라 나무쪽을 보니 도토리를 주워다 먹는 다람쥐가 보인다.
“그러네, 다람쥐네….”
“귀엽죠!”
가면서 하는 일이라곤 이런 식으로 위설아와 가끔 대화나 하는 정도였다.
대충 떠올려보자면 감자보단 약과가 맛있다느니, 독수리를 잡아먹어 봤는데 생각보다 질겼다느니.
멧돼지보단 그냥 돼지가 더 맛있다느니…. 생각해보니 왜 다 음식 얘기지?
다람쥐가 귀엽지 않냐며 손으로 가리키던 위설아를 보다 오싹한 기분이 들어 물어봤다.
결국, 궁금함을 못 이겨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너 혹시 다람쥐도 먹어봤어?”
내 질문에 위설아가 날 이상한 얼굴로 본다.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다람쥐는 못 먹어요.”
도련님 혹시 바보예요?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굉장히 억울했다.
독수리도 먹었다면서 다람쥐를 못 먹을 건 또 뭐란 말인가.
뭔가 얄미워서 위설아가 약과를 하나 집어 먹으려 들기에 뺏어서 먹었다.
“허…. 허어어!”
위설아가 그걸 보더니 눈이 댕그래진다.
입을 벌린 체로 멍때리다 점점 충격을 받는 듯 얼굴이 재밌게 변한다.
마치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을 들은 듯한 얼굴이었다.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속이 좀 풀리는구먼.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너는 약과 좀 그만 먹어야 해. 얼굴 봐 동글동글해졌잖아.”
“안 동글동글해요!”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안 그런가.”
“홍와 언니! 저 동글동글해졌어요!?”
맞은편에서 우리 애길 들으며 웃고 있던 홍와라는 시종이 위설아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천천히 위설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어 도망친 것이었다.
그걸 보고 위설아의 표정이 충격에서 체념으로 바뀐다.
“나는…. 동글동글이야….”
“응, 너는 동글동글이야.”
내 마무리 일격에 정신을 놓아버린 위설아는 그대로 벽에 얼굴을 기대고 입을 꾹 닫아버렸다.
솔직히 위설아의 얼굴이 찐빵마냥 부풀어 오른 건 아니었다.
그냥 처음 봤을 때 비해 살이 좀 오른 것뿐이다.
‘근데 뭐, 살찐 건 맞잖아?’
위설아의 말수가 줄은 덕분에 잠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문득 밖 풍경을 보다 앞으로 있을 일을 떠올렸다.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사천당문을 방문 하는 것은 구 할쯤 핑계니 그러려니 하고. 금천연가와 계천문을 생각해야 했다.
비고를 찾는데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을까.
예상하자면 많아 봐야 3일?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촉박했다. 아는 정보라고는 발견됐다는 지역과 주위 환경 정도.
비고를 끝끝내 못 찾게 되면 정말 개방에라도 뿌려버릴 생각을 반쯤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계천문이나 다른 사파놈들, 그중에서도 마인으로 변질하는 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할 방법을 좀 찾아야 했다.
만일 비고를 찾는다면? 그건 일단 그때 가서 생각해야 했다.
‘슬슬 짐마차에 담은 식자재도 떨어지고 있던데.’
예상보다 가는 길이 거칠 다는 것과 이틀째에 비가 왔던 것 탓에 일차적으로 목표했던 지점까지 거리가 좀 남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위설아가 엄청나게 먹어대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무연에게 물었다.
“무연, 길이 멀쩡해지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마부의 말로는 이 속도면 한 시진은 더 가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정말 걷는 게 더 빠르겠네.”
마음 같아선 다 버리고 그냥 뛰어가는 게 낫겠다 싶지만, 아마 반 시진도 못 뛰고 지칠 육체라던지, 당문에 가져갈 선물이라 던 지가 마음에 걸렸다.
“하하….”
멋쩍게 웃음 짓던 무연이 순간 날이 선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무연에게 물었다.
“왜 그래?”
“정지.”
대답은 없었다.
경직된 목소리다. 순식간에 일행이 가던 길을 멈췄다.
나 또한 무연의 분위기에 이상함을 느껴 내기를 끌어올렸다.
오감에 묘한 기척이 잡힌다. 그걸 느끼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다름 아닌 마물의 기척이었다.
“어쩐지 며칠 내내 평화롭다 했어.”
“수가 많지 않습니다. 금방 처리할 테니 쉬고 계시지요.”
저번처럼 나와서 나대지 말고 박혀있으라는 얘기였다.
나 또한 괜히 마석을 쥐었다간 저번처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이번엔 그냥 앉아있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마경문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마경문이 닫히고 남은 찌꺼기였다.
다가오는 기척이 재빠르다. 우릴 노리고 오는 걸까? 그렇다기엔 뭔가 이상했다.
사사사삭.
풀숲에서 묘한 소리가 들린다.
무연과 호위들은 진작 검을 뽑고 있었다. 언제 달려들어도 곧바로 벨 수 있도록.
이윽고 얼마 안 가 풀숲을 뚫은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쿠와아앙!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무연의 검이 놈을 가르며 지나갔다.
서걱, 쿵!
무연이 내지른 검에 즉사했는지 녀석이 땅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녀석은 곰의 형상을 한 마물이었다.
항상 이장로 보고 곰 같다 속으로 생각했는데 직접 덩치를 비교해 보자니 정말 이장로와 비슷했다.
녹주웅(綠株熊).
녹각견과 마찬가지로 제일 낮은 등급의 마경문에서 튀어나오는 놈이었다.
“이놈….”
무연이 놈을 보다 미간을 찌푸린다.
“제가 벤 것 말고 상처가 또 있습니다.”
“음?”
무연의 말에 확인해보니 무연이 놈에게 입힌 검상 말고도 다른 검상이 또 있었다.
내기로 느껴지던 이질적인 움직임들은 그럼 놈들이 누군가에서 도망치기 위함이었나?
마물이 인간에게서?
그건 또 얼척없는 얘기였다.
본능이라곤 무언가 살육할 생각밖에 없는 놈들이…? 심지어 느껴지던 마물들의 기척이 하나둘 사라진다.
저 뒤편에서 무언가 다른 기척이 놈들을 하나씩 죽이는 게 느껴졌다.
빠르다. 조금씩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무연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바로 호위와 함께 적을 대치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점차 가까워지던 인기척은 망설임 없이 풀숲을 뚫고 나타난다.
-쿠아아아아앙!
뛰쳐나온 것은 아까처럼 녹주웅이었으나.
촤악!
뒤따라 날아온 검기(劍氣)가 녹주웅의 머리를 가르며 지나갔다.
쿠웅!
쓰러진 녹주웅에게서 파란색 핏물이 흘러나온다.
무연은 마물이 죽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풀숲 너머를 보고 있었다.
이윽고 무연이 물었다.
“누구시오. 신원을 밝히시오!”
무연의 외침에 풀숲에서 금방 누군가 나타났다.
검은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피풍의로 꽁꽁 감춰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것은 체형 상 그가 여인이라는 것뿐.
그녀는 사뿐한 걸음으로 우리에게 점점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다가올수록 점점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눈길이 갔다.
여행을 오래 했는지 푸른색 무복 여기저기에 나뭇잎이 잔뜩 붙어있고 먼지가 껴있었다.
여인은 천천히 검을 검집에 넣고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오지만, 무연은 여전히 검을 뽑아 여인에게 겨누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다가왔다 싶더니, 여인이 자신의 피풍의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드러난 여인의 얼굴을 보고 호위 중 누군가 헛숨을 삼킨다.
나이대는, 약관은 되지 않은 것 같으나 나보단 많아 보인다.
백청발의 머릿결과 그걸 닮은 새하얀 피부, 오뚝한 콧날에 생기를 담은 듯한 입술은.
이를 종합하니 그녀가 천하에 손꼽을 미인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천천히 무연을 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혼자 여행을 나온 터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네요.”
“혼자…? 소저께서 이놈들을 혼자 처리하고 계셨단 말이오?”
“제가 평소에 운이 좀 나쁩니다. 하필 이번에도 제 눈앞에 마경문이 튀어나오지 뭐에요. 잡는다고 잡았는데 몇 마리가 도망쳐버렸어요.”
“마물이…. 도망을…?”
“집안 무공이 그래서 그런가…. 자꾸 이러더라구요.”
무연이 그녀와 대화를 하는 사이.
나 또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외형 탓이 아니었다.
푸른 무복 아랫단에 작게 적힌 하얀색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남궁(南宮).
“미친….”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욕지거릴 뱉었다.
중원에서 저 글자를 무복에 적고 돌아다닐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았다.
하물며 저런 외형에 여인이라면 오로지 한 명뿐일 것이다.
‘대체 저 미친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식은땀이 흐르기에 천천히 닦아냈다.
나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현생은 서로 모르는 사이일 테지만, 전생은 달랐다.
이번 생에 알게 된 그 누구보다 더욱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다. 이건 설렘 같은 아름다운 단어가 아니었다.
공포, 오로지 이건 공포다.
여인이 무연에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이름은 남궁비아라고 합니다. 혹시 사천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녀의 이름을 듣고 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는 역시였다.
나는 이어진 말에 다시 한번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사례는 하겠습니다.”
“안돼 시발…. 절대 안 돼!”
나는 마차 문을 박차고 나가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무감정해 보이는 그녀의 눈은 전생과 똑같았다. 그 덕에 더 소름이 끼쳤다.
마검후(魔劒后) 남궁비아.
전생에 검에 미쳐 마인이 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세가를 직접 부숴버린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마검후(魔劍后). (2)
위설아에 관해선 적당히 얘기를 끝낸 뒤, 우선 밤이 늦었기에 급히 요깃거리를 만들어 식사를 끝냈다.
며칠을 굶었는가 위설아의 입에 쉼 없이 음식이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당황해서 원래 저렇게 먹냐 물어보니.
시종들은 익숙한 듯, 원래 위설아는 저렇게 먹는다는 답변을 했다.
생각해보니까 첫날 감자를 계속 집어 먹던 게 원래도 잘 먹는 쪽이었나보다.
입이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몇 명분이 늘어난 것 같은 수준이라 중간에 들를 거리에서 이것저것 좀 많이 사가야 할 것 같았다.
계곡물에 달빛이 비친다.
야영을 위해 계곡 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그 탓인지 봄바람 평소보다 더 추워지는 날씨가 느껴졌다.
자시쯤 되니 슬슬 호위들이 불침번을 서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천막 주위에 마선부를 하나씩 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기로 주위를 계속 살펴봐야 하는 일이라 고된 일이었다.
달을 보며 앉아있자니 무연이 다가왔다.
“도련님 슬슬 들어가시지요, 날씨가 추워집니다.”
“아무리 추워도 호위들보단 내가 더 따뜻할걸.”
심법의 영향 탓에 지금도 시원하다 느낄 뿐 춥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모닥불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위설아가 천막에서 시종들에게 뭔가 받더니 촐랑거리며 뛰어온다. 위설아는 만두가 든 그릇을 들고 오고 있었다.
갑자기 웬 만두…?
김이 모락모락 한 것이 방금 찐 듯한 모양새였다. 대체 어떻게 여기서 저걸 찐 거지?
“언니들이 오빠들 나눠주래요!”
알고 보니 호위들 먹으라고 준비한 야식인가보다.
위설아가 하나씩 나눠주는데 그걸 보고 호위 놈들이 헤벌쭉한 미소를 짓는다.
위설아의 외모는 대단한 무기였다. 전생에 다 컸을 성인 때는 위설아와의 대련 중 얼굴에 넋이 나가서 대련에 패배한 놈도 있었는데, 지금이라고 좀 다를까.
이윽고 모두에게 만두를 돌린 위설아가 내 옆에 슬쩍 착석했다.
“도련님 건 큰 거로 가져왔어요.”
해맑게 웃으며 위설아는 만두 두 개를 내게 건넨다.
나는 만두를 받아들고 말했다.
“안 자도 되겠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일정이 정해져 있기에 내일은 해가 뜨자마자 출발해야 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잠을 자야 그나마 편할 수 있을 것이다.
“도련님도 안 주무시잖아요.”
“...나야 뭐.”
나는 조금의 내기라도 있기에 괜찮지만, 아직은 위설아가 무인이 아니기에 조금 힘들 수 있으리라.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몽글몽글하고 촉촉한 것이 역시 만두는 위대했다.
찬 바람이 슬슬 거세진다. 무연이 몸을 풀며 일어났다. 나 또한 슬슬 마차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위설아의 등을 살짝 밀었다.
“빨리 들어가, 내일 못 일어나면 버리고 갈 거니까.”
“힝…. 너무해요.”
“만두는 맛있었어.”
남은 만두를 한입에 집어넣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
“진짜 징그럽게 멀다.”
시간이 흘러 사천을 가기 위해 세가를 떠난 지 어느덧 나흘째가 되었다.
그동안의 일이라곤 낮에는 마차를 타고 밤에는 야영을 반복했다.
틈틈이 심법 수련도 겸했으나 딱히 이렇다 할 성장은 아니었다.
내공이란 게 애초에 뜬금없이 깨달음을 얻는다고 확 늘고 이런 것이 아니었으니 감내해야 했다.
“...가는 건 둘째치고 올 때는 또 어쩌지.”
아마 그때도 이렇게 걸리겠지. 그걸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은 길이 거칠어서 마차가 속도를 낼 수도 없는 상태였다.
덕분에 바깥 풍경을 질리도록 보고 있었다.
“도련님!”
“왜 불러.”
“저기 봐요. 저기! 다람쥐예요!”
위설아에 말을 따라 나무쪽을 보니 도토리를 주워다 먹는 다람쥐가 보인다.
“그러네, 다람쥐네….”
“귀엽죠!”
가면서 하는 일이라곤 이런 식으로 위설아와 가끔 대화나 하는 정도였다.
대충 떠올려보자면 감자보단 약과가 맛있다느니, 독수리를 잡아먹어 봤는데 생각보다 질겼다느니.
멧돼지보단 그냥 돼지가 더 맛있다느니…. 생각해보니 왜 다 음식 얘기지?
다람쥐가 귀엽지 않냐며 손으로 가리키던 위설아를 보다 오싹한 기분이 들어 물어봤다.
결국, 궁금함을 못 이겨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너 혹시 다람쥐도 먹어봤어?”
내 질문에 위설아가 날 이상한 얼굴로 본다.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다람쥐는 못 먹어요.”
도련님 혹시 바보예요?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굉장히 억울했다.
독수리도 먹었다면서 다람쥐를 못 먹을 건 또 뭐란 말인가.
뭔가 얄미워서 위설아가 약과를 하나 집어 먹으려 들기에 뺏어서 먹었다.
“허…. 허어어!”
위설아가 그걸 보더니 눈이 댕그래진다.
입을 벌린 체로 멍때리다 점점 충격을 받는 듯 얼굴이 재밌게 변한다.
마치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을 들은 듯한 얼굴이었다.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속이 좀 풀리는구먼.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너는 약과 좀 그만 먹어야 해. 얼굴 봐 동글동글해졌잖아.”
“안 동글동글해요!”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안 그런가.”
“홍와 언니! 저 동글동글해졌어요!?”
맞은편에서 우리 애길 들으며 웃고 있던 홍와라는 시종이 위설아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천천히 위설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어 도망친 것이었다.
그걸 보고 위설아의 표정이 충격에서 체념으로 바뀐다.
“나는…. 동글동글이야….”
“응, 너는 동글동글이야.”
내 마무리 일격에 정신을 놓아버린 위설아는 그대로 벽에 얼굴을 기대고 입을 꾹 닫아버렸다.
솔직히 위설아의 얼굴이 찐빵마냥 부풀어 오른 건 아니었다.
그냥 처음 봤을 때 비해 살이 좀 오른 것뿐이다.
‘근데 뭐, 살찐 건 맞잖아?’
위설아의 말수가 줄은 덕분에 잠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문득 밖 풍경을 보다 앞으로 있을 일을 떠올렸다.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사천당문을 방문 하는 것은 구 할쯤 핑계니 그러려니 하고. 금천연가와 계천문을 생각해야 했다.
비고를 찾는데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을까.
예상하자면 많아 봐야 3일?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촉박했다. 아는 정보라고는 발견됐다는 지역과 주위 환경 정도.
비고를 끝끝내 못 찾게 되면 정말 개방에라도 뿌려버릴 생각을 반쯤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계천문이나 다른 사파놈들, 그중에서도 마인으로 변질하는 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할 방법을 좀 찾아야 했다.
만일 비고를 찾는다면? 그건 일단 그때 가서 생각해야 했다.
‘슬슬 짐마차에 담은 식자재도 떨어지고 있던데.’
예상보다 가는 길이 거칠 다는 것과 이틀째에 비가 왔던 것 탓에 일차적으로 목표했던 지점까지 거리가 좀 남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위설아가 엄청나게 먹어대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무연에게 물었다.
“무연, 길이 멀쩡해지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마부의 말로는 이 속도면 한 시진은 더 가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정말 걷는 게 더 빠르겠네.”
마음 같아선 다 버리고 그냥 뛰어가는 게 낫겠다 싶지만, 아마 반 시진도 못 뛰고 지칠 육체라던지, 당문에 가져갈 선물이라 던 지가 마음에 걸렸다.
“하하….”
멋쩍게 웃음 짓던 무연이 순간 날이 선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무연에게 물었다.
“왜 그래?”
“정지.”
대답은 없었다.
경직된 목소리다. 순식간에 일행이 가던 길을 멈췄다.
나 또한 무연의 분위기에 이상함을 느껴 내기를 끌어올렸다.
오감에 묘한 기척이 잡힌다. 그걸 느끼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다름 아닌 마물의 기척이었다.
“어쩐지 며칠 내내 평화롭다 했어.”
“수가 많지 않습니다. 금방 처리할 테니 쉬고 계시지요.”
저번처럼 나와서 나대지 말고 박혀있으라는 얘기였다.
나 또한 괜히 마석을 쥐었다간 저번처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이번엔 그냥 앉아있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마경문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마경문이 닫히고 남은 찌꺼기였다.
다가오는 기척이 재빠르다. 우릴 노리고 오는 걸까? 그렇다기엔 뭔가 이상했다.
사사사삭.
풀숲에서 묘한 소리가 들린다.
무연과 호위들은 진작 검을 뽑고 있었다. 언제 달려들어도 곧바로 벨 수 있도록.
이윽고 얼마 안 가 풀숲을 뚫은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쿠와아앙!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무연의 검이 놈을 가르며 지나갔다.
서걱, 쿵!
무연이 내지른 검에 즉사했는지 녀석이 땅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녀석은 곰의 형상을 한 마물이었다.
항상 이장로 보고 곰 같다 속으로 생각했는데 직접 덩치를 비교해 보자니 정말 이장로와 비슷했다.
녹주웅(綠株熊).
녹각견과 마찬가지로 제일 낮은 등급의 마경문에서 튀어나오는 놈이었다.
“이놈….”
무연이 놈을 보다 미간을 찌푸린다.
“제가 벤 것 말고 상처가 또 있습니다.”
“음?”
무연의 말에 확인해보니 무연이 놈에게 입힌 검상 말고도 다른 검상이 또 있었다.
내기로 느껴지던 이질적인 움직임들은 그럼 놈들이 누군가에서 도망치기 위함이었나?
마물이 인간에게서?
그건 또 얼척없는 얘기였다.
본능이라곤 무언가 살육할 생각밖에 없는 놈들이…? 심지어 느껴지던 마물들의 기척이 하나둘 사라진다.
저 뒤편에서 무언가 다른 기척이 놈들을 하나씩 죽이는 게 느껴졌다.
빠르다. 조금씩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무연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바로 호위와 함께 적을 대치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점차 가까워지던 인기척은 망설임 없이 풀숲을 뚫고 나타난다.
-쿠아아아아앙!
뛰쳐나온 것은 아까처럼 녹주웅이었으나.
촤악!
뒤따라 날아온 검기(劍氣)가 녹주웅의 머리를 가르며 지나갔다.
쿠웅!
쓰러진 녹주웅에게서 파란색 핏물이 흘러나온다.
무연은 마물이 죽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풀숲 너머를 보고 있었다.
이윽고 무연이 물었다.
“누구시오. 신원을 밝히시오!”
무연의 외침에 풀숲에서 금방 누군가 나타났다.
검은 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피풍의로 꽁꽁 감춰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것은 체형 상 그가 여인이라는 것뿐.
그녀는 사뿐한 걸음으로 우리에게 점점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다가올수록 점점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눈길이 갔다.
여행을 오래 했는지 푸른색 무복 여기저기에 나뭇잎이 잔뜩 붙어있고 먼지가 껴있었다.
여인은 천천히 검을 검집에 넣고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오지만, 무연은 여전히 검을 뽑아 여인에게 겨누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다가왔다 싶더니, 여인이 자신의 피풍의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드러난 여인의 얼굴을 보고 호위 중 누군가 헛숨을 삼킨다.
나이대는, 약관은 되지 않은 것 같으나 나보단 많아 보인다.
백청발의 머릿결과 그걸 닮은 새하얀 피부, 오뚝한 콧날에 생기를 담은 듯한 입술은.
이를 종합하니 그녀가 천하에 손꼽을 미인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천천히 무연을 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혼자 여행을 나온 터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네요.”
“혼자…? 소저께서 이놈들을 혼자 처리하고 계셨단 말이오?”
“제가 평소에 운이 좀 나쁩니다. 하필 이번에도 제 눈앞에 마경문이 튀어나오지 뭐에요. 잡는다고 잡았는데 몇 마리가 도망쳐버렸어요.”
“마물이…. 도망을…?”
“집안 무공이 그래서 그런가…. 자꾸 이러더라구요.”
무연이 그녀와 대화를 하는 사이.
나 또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외형 탓이 아니었다.
푸른 무복 아랫단에 작게 적힌 하얀색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남궁(南宮).
“미친….”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욕지거릴 뱉었다.
중원에서 저 글자를 무복에 적고 돌아다닐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았다.
하물며 저런 외형에 여인이라면 오로지 한 명뿐일 것이다.
‘대체 저 미친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식은땀이 흐르기에 천천히 닦아냈다.
나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현생은 서로 모르는 사이일 테지만, 전생은 달랐다.
이번 생에 알게 된 그 누구보다 더욱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다. 이건 설렘 같은 아름다운 단어가 아니었다.
공포, 오로지 이건 공포다.
여인이 무연에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이름은 남궁비아라고 합니다. 혹시 사천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녀의 이름을 듣고 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는 역시였다.
나는 이어진 말에 다시 한번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사례는 하겠습니다.”
“안돼 시발…. 절대 안 돼!”
나는 마차 문을 박차고 나가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무감정해 보이는 그녀의 눈은 전생과 똑같았다. 그 덕에 더 소름이 끼쳤다.
마검후(魔劒后) 남궁비아.
전생에 검에 미쳐 마인이 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세가를 직접 부숴버린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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