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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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위설아, 그날의 기억.
위설아, 그날의 기억.
위설아는 오늘 같이 가끔 특이한 꿈을 꿨다.
달이 저문 밤,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꿈이다.
위설아는 이런 꿈을 악몽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런 걸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는 듯 했다.
무엇에 그리 화가 났는지 분노에 차있는 사람들을 보는것은 겁이 질렸지만, 꿈 속의 자신은 그런걸 신경쓰지 않나보다.
이쁜 검이다.
마치 옛날 할아버지가 보여주던것과 닮아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검을 드는 것을 싫어하셨다. 칭찬을 받고자 할아버지 앞에서 따라했다가 호되게 혼났다.
그리고 그날 할아버지가 우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우는 걸 처음봤다.
그걸 보고 나는 다신 검 가지고 놀지 않겠다 약속했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울음을 그쳤다.
울음을 그쳤지만 할아버진 항상 울고 있다.
남들은 인자? 상냥? 뭔가 어려운 말을 쓰지만 나만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항상 울고 있다.
할아버진 내게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미안할까? 설아는 행복한데.
언니들이 나한테 매일 하는 ‘아직 어리니까 몰라도 된단다’랑 같은 걸까? 나는 어리고 싶지 않은데...
꿈속의 자신은 키가 크다. 머리카락도 훨씬 길다.
까만 머리카락인 나랑 다르게 머리도 하얗다.
얼굴도 예뻤다.
언니 오빠들은 날 보고 이쁘다고 말해주지만, 꿈속의 나는 너무 이뻣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문득 도련님 생각이 났다.
‘도련님은 나한테 이쁘다고 안 해주는데...’
머리를 묶고나선 다 이쁘다고 말해줘서 도련님 한테도 얼른 가서 자랑했는데.
도련님은 금방 내 눈을 피했다.
도련님 눈에는 내가 안 이쁜걸까...?
도련님은 착한 도련님이다.
할아버지랑만 살다 처음 만난 또래 친구였다.
처음 봤을 땐 친구였는데, 할아버지 말로는 이제 도련님이라고 해야한다고 했다.
친구 하면 안된다고했다. 혼난다고...
그래서 도련님이다.
도련님은 처음 봤을 땐 무섭게 생겼었지만, 용기 내서 말을 걸어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내 감자도 먹고 맛있다고 해주고 약과도 줬다. 약과를 처음 먹고 깜짝 놀랐다.
감자보단 약과가 훨씬 맛있었다. 감자는 그 뒤로 안 먹게 됐다.
도련님은 매일 나한테 약과를 준다.
자기도 먹으면 좋을 텐데 도련님은 단 게 싫다고 한다.
근데 언니들한테 물어보니 도련님은 단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오기 전에 매일매일 먹었다고, 그럼 지금은 나한테 주려고 거짓말 하는 걸까?
만두는 좋아하는 것 같던데….
어제도 약과랑 만두를 사 왔다. 오랜만에 도련님이 웃는 것도 봤다.
도련님이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심장이 아팠다.
할아버지한테 가서 말하니 할아버지가 도련님을 무섭게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그런 눈을 하는 건 처음 봤다.
어제 도련님이 내가 군것질을 하더니 점점 얼굴이 동글동글해진다며 날 보며 웃었다.
....너무해, 이제 약과 안 먹을 거야.
‘....’
아, 안 먹는 건 아니고 두, 두 개만 먹을 거야.
그런 도련님은 가끔, 아주 가끔 날 보며 할아버지랑 같은 표정을 얼굴을 한다.
날 거리에서 처음 봤을 때도.
마차 타고 오는 길에 커다란 멍멍이들이 나타났을 때도.
날 보는 눈은 할아버지랑 같은 얼굴이었다.
왜 그럴까? 나는 행복한데.
도련님도 할아버지도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르겠다.
꿈을 계속 꾸는데, 오늘의 악몽은 좀 달랐다. 보통은 이쯤에서 깨야하는데 이번엔 처음 보는 곳이었다.
악몽은 그 뒤로도 쭈우욱 계속되더니 내가 어느 집에 들어갔다.
그 안에도 아까 내가 싸우던 사람들처럼 화가 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또 싸웠다.
내 온몸에 피가 묻어있다. 많이 다친 것 같았다. 나는 아프지 않은 걸까?
나는 많이 쌘거 같다. 엄청 많은 사람이 달려드는데도 다 무찌르고 앞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잘 때 들려주는 얘기 같았다.할아버지가 해주는 얘기에선 할아버지가 가장 강했다.
막 수백 명이 왔다느니 나쁜 놈들이라 다 무찔렀다느니 하는 얘기였는데….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을까?
그렇게 나는 한참을 앞으로 가더니 어떤 아저씨랑 만나게 됐다.
착하게 생긴 아저씨다. 근데 알게 모르게 뭔가 무서웠다.
‘왜 그랬어?’
꿈속에 내가 말했다. 얼굴처럼 이쁜 목소리다. 정말 나도 크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내 말에 착하게 생겨놓고 무서운 아저씨가 말했다.
‘설아야…. 날 구하러 와줬구나….’
‘입 닥쳐 그 더러운 입으로 날 부르지마, 말해봐, 언제부터였어?’
‘무슨….’
‘다 알고 왔으니 수작 부리지 마.
당장 반으로 갈라 죽이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거야. 똑바로 대답해.’
무, 무서워..!
저렇게 이쁘게 생겨놓고 너무 무섭게 말한다…. 나는 크면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내 말 때문일까? 착하게 생겼지만 무서운 아저씨의 얼굴이 달라진다.
이젠 무섭게 생긴 무서운 아저씨가 돼버렸다…!
‘아, 이걸 들킨 건가…? 아쉽네 아주 조금만 더했으면 됐을 텐데.’
‘당신…!’
‘그래도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뿌득 뿌득-
무서운 아저씨한테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났다. 몸이 점점 달라지는 게 너무 징그러웠다.
‘너무 늦었어 설아야. 진작 눈치챘어야지.’
아저씨의 몸이 점점 커진다. 나는 싸울 생각인지 아저씨한테 달려간다.
아까와 같은 이쁜 검이었지만, 아저씨한테는 안 통했다.
‘뭣…!’
내가 깜짝 놀라 한다. 그리곤 아저씨의 몸에서 뭔가 튀어나오더니…!
히익!
내 몸을 찔렀어…!! 뭔가 날카로운 것이 내 몸을 꿰뚫었다.
아까 빠르게 움직이던 것과 달리 아저씨의 공격은 못 피했나 보다.
아저씨는 그대로 날 내팽개쳤다. 쿵! 하고 날아가더니 벽에 박혀버렸다.
너무 무서웠다. 너무 징그러워서 보기 싫어서 꿈에서 깨고 싶었다.
빨리 일어나란 말이야…! 이런 거 보기 싫어…. 제발…!!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너무 무서운 꿈이었다.
몸을 뚫린 꿈속의 내가 점점 죽어간다.
할아버지를 부르고 싶었다. 할아버지라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할아버지는 강한데.
그때 꿈속의 내가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하는 걸까.
‘...안해.’
너무 작아서 안 들리는 말이었다.
저 멀리 무서운 아저씨가 다가온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무서운 아저씨가 내 앞에 오더니 말했다.
‘참 멍청하지? 설아 너도, 그놈도. 특히 그놈이 제일 병신같아, 고작 그깟 놈이 누굴 위한다고.’
아저씨의 말에 내가 눈물을 흘린다.
그놈이 누굴까. 누굴 말하는 걸까. 내 꿈인데 내가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아저씨가 또 나한테 뭔가 하려고 한다. 아까 날 찔렀던 칼같은 거였다.
‘가서 보게 된다면 전해줘, 너는 참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다고.’
‘미안해…. 미안해.’
아저씨의 말에 내가 사과를 했다. 근데 아저씨한테 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누구한테 하는 걸까…?
이어서 아저씨가 날카로운걸 나한테 휘두른다.
나는 보기 싫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히이익!”
다행히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등이 축축했다. 다 땀인 거 같았다.
옆을 보니 할아버지 자리가 비어있다. 이미 나가서 일하고 계신가보다.
꿈이 너무 무서웠다. 진짜 겪었던 일 같아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이상하게 문득 도련님이 보고 싶었다.
******************
하오문을 다녀오고 다음 날이 되었다.
먹은 만두양이 좀 많았기에 일어나서 하체나 한번 조져볼까 싶은 참이었다.
“구절엽이라고 합니다. 본가의 혈족께 대련을 요청합니다.”
근데 이놈은 또 뭐지…?
방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놈이 대뜸 말했다.
나이를 측정해보자면 나와 비슷한 또래 같고 날렵한 턱선에 구가 특유의 싸가지 없는 눈매가 눈에 들어온다.
재수 없는 것은 심하게 미남자라는 것이었다. 성씨가 구 씨라거나 눈매나 눈동자가 붉은 것이 구가의 혈족임을 증명하는 듯했으나.
최소한 가주의 혈족은 아니었다.
순간 아버지의 숨겨놓은 아들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아는 한에는 없었다.
“누구?”
그래서 누굴까. 어딘가 익숙한 얼굴인 듯했으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몰라 의문을 표하자 구절엽인지 구철엽인지 하는 이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실수했나? 근데 진짜 모르겠는데….
내 의문은 대뜸 나타난 이장로가 해결해줬다.
“절엽이 아니냐,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당신은 왜 여깄는데 이 노인네야….
요즘 들어 자주 보이는 것 같은 이장로가 신경 쓰였으나 말을 꺼내봤자 귓등으로도 안 들어줄 게 뻔하니 굳이 꺼내진 않았다.
구절엽은 이장로를 보고 예를 취했다.
“이장로를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한 일 년만인가?”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노부는 항상 잘 지내지 하하하하! 너도 잘 지냈느냐?.”
“...아니 갑자기 제 처소에서 담소 나누지 마시라고요.”
그래서 누군데.
내가 계속 갸우뚱거리고 있으니 이장로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양천아, 정말 누군지 몰라보겠느냐?”
“그래서 이제 한 세 번쯤 의문을 가지는 중입니다.”
“이걸 어찌해야 할꼬, 기억력이 물고기만도 못하구나.”
이 노인네는 왜 갑자기 아침부터 시비를 거는 걸까…?
“절엽이가 누구긴. 일장로의 손자 아니냐.”
이장로의 말에 내가 구절엽을 쳐다봤다. 일장로라고 하면….
‘그 깐깐하고 재수 없는 노인네.’
태령열검(兌零熱劍) 구창준. 아버지에겐 백부, 내겐 종조 되는 이었으나.
그다지 좋은 감상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당장 날 찾아온 이장로는 부담스러움이 앞서있지만, 그 뒤에는 분명 감사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가 손에 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장로는 다르다.
할 말은 많지만, 딱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무튼, 일장로님 손자라고요?”
“서로 몇 번 봤을 텐데 모르느냐?”
그렇게 말해도 까마득한 기억이었다. 상대방은 날 기억하고 있는 듯했으나, 나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게 기분이 나쁜지 구절엽이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걸 보고 내가 얼른 사과했다.
“아니, 미안합….”
“그러시겠죠, 그렇게 호되게 당하셨으니 창피함에 잊고 싶으실 만합니다.”
뭐, 이새끼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때 모습 그대로시라니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만, 여전히 실망스럽네요.”
“이장로님.”
“...왜 그러냐?”
“얘 일장로님 손자 맞나봐요, 똑같네! 아주.”
“....”
이장로는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공감을 아주 깊이 하는 느낌이었다.
기억 속에 있는 일장로랑 아주 똑같았다. 내가 뭐라 하든 딱히 관심이 없는 듯 말을 잇는다.
“후우우우,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성정에 맞지 않으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한번 본가의 혈족께 대련을….”
“도련님…!!”
구절엽의 말을 끊고 나타난 것은 위설아였다.
“미친.”
위설아는 왠지 모르겠으나 반쯤 젖어있었다. 젖어있는 옷에 위설아의 살결이 비치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심지어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나는 곧바로 담요를 집어 들고 위설아에게 칭칭 감았다.
“뭐 하는 거야! 남들 보면 어쩌려고.”
“도련님! 제가 있잖아요…. 꿈을 꿨는데 말이에요….”
“일공자님.”
구절엽이 말을 전하려던 위설아의 말을 끊었다. 시선을 구절엽에게 옮기니 놈의 두 눈이 위설아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구절엽의 흔들리는 동공과 살짝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이분은 누구십니까?”
...이 새끼 봐라?
위설아, 그날의 기억.
위설아는 오늘 같이 가끔 특이한 꿈을 꿨다.
달이 저문 밤,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꿈이다.
위설아는 이런 꿈을 악몽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런 걸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는 듯 했다.
무엇에 그리 화가 났는지 분노에 차있는 사람들을 보는것은 겁이 질렸지만, 꿈 속의 자신은 그런걸 신경쓰지 않나보다.
이쁜 검이다.
마치 옛날 할아버지가 보여주던것과 닮아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검을 드는 것을 싫어하셨다. 칭찬을 받고자 할아버지 앞에서 따라했다가 호되게 혼났다.
그리고 그날 할아버지가 우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우는 걸 처음봤다.
그걸 보고 나는 다신 검 가지고 놀지 않겠다 약속했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울음을 그쳤다.
울음을 그쳤지만 할아버진 항상 울고 있다.
남들은 인자? 상냥? 뭔가 어려운 말을 쓰지만 나만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항상 울고 있다.
할아버진 내게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미안할까? 설아는 행복한데.
언니들이 나한테 매일 하는 ‘아직 어리니까 몰라도 된단다’랑 같은 걸까? 나는 어리고 싶지 않은데...
꿈속의 자신은 키가 크다. 머리카락도 훨씬 길다.
까만 머리카락인 나랑 다르게 머리도 하얗다.
얼굴도 예뻤다.
언니 오빠들은 날 보고 이쁘다고 말해주지만, 꿈속의 나는 너무 이뻣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문득 도련님 생각이 났다.
‘도련님은 나한테 이쁘다고 안 해주는데...’
머리를 묶고나선 다 이쁘다고 말해줘서 도련님 한테도 얼른 가서 자랑했는데.
도련님은 금방 내 눈을 피했다.
도련님 눈에는 내가 안 이쁜걸까...?
도련님은 착한 도련님이다.
할아버지랑만 살다 처음 만난 또래 친구였다.
처음 봤을 땐 친구였는데, 할아버지 말로는 이제 도련님이라고 해야한다고 했다.
친구 하면 안된다고했다. 혼난다고...
그래서 도련님이다.
도련님은 처음 봤을 땐 무섭게 생겼었지만, 용기 내서 말을 걸어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내 감자도 먹고 맛있다고 해주고 약과도 줬다. 약과를 처음 먹고 깜짝 놀랐다.
감자보단 약과가 훨씬 맛있었다. 감자는 그 뒤로 안 먹게 됐다.
도련님은 매일 나한테 약과를 준다.
자기도 먹으면 좋을 텐데 도련님은 단 게 싫다고 한다.
근데 언니들한테 물어보니 도련님은 단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오기 전에 매일매일 먹었다고, 그럼 지금은 나한테 주려고 거짓말 하는 걸까?
만두는 좋아하는 것 같던데….
어제도 약과랑 만두를 사 왔다. 오랜만에 도련님이 웃는 것도 봤다.
도련님이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심장이 아팠다.
할아버지한테 가서 말하니 할아버지가 도련님을 무섭게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그런 눈을 하는 건 처음 봤다.
어제 도련님이 내가 군것질을 하더니 점점 얼굴이 동글동글해진다며 날 보며 웃었다.
....너무해, 이제 약과 안 먹을 거야.
‘....’
아, 안 먹는 건 아니고 두, 두 개만 먹을 거야.
그런 도련님은 가끔, 아주 가끔 날 보며 할아버지랑 같은 표정을 얼굴을 한다.
날 거리에서 처음 봤을 때도.
마차 타고 오는 길에 커다란 멍멍이들이 나타났을 때도.
날 보는 눈은 할아버지랑 같은 얼굴이었다.
왜 그럴까? 나는 행복한데.
도련님도 할아버지도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르겠다.
꿈을 계속 꾸는데, 오늘의 악몽은 좀 달랐다. 보통은 이쯤에서 깨야하는데 이번엔 처음 보는 곳이었다.
악몽은 그 뒤로도 쭈우욱 계속되더니 내가 어느 집에 들어갔다.
그 안에도 아까 내가 싸우던 사람들처럼 화가 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또 싸웠다.
내 온몸에 피가 묻어있다. 많이 다친 것 같았다. 나는 아프지 않은 걸까?
나는 많이 쌘거 같다. 엄청 많은 사람이 달려드는데도 다 무찌르고 앞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잘 때 들려주는 얘기 같았다.할아버지가 해주는 얘기에선 할아버지가 가장 강했다.
막 수백 명이 왔다느니 나쁜 놈들이라 다 무찔렀다느니 하는 얘기였는데….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을까?
그렇게 나는 한참을 앞으로 가더니 어떤 아저씨랑 만나게 됐다.
착하게 생긴 아저씨다. 근데 알게 모르게 뭔가 무서웠다.
‘왜 그랬어?’
꿈속에 내가 말했다. 얼굴처럼 이쁜 목소리다. 정말 나도 크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내 말에 착하게 생겨놓고 무서운 아저씨가 말했다.
‘설아야…. 날 구하러 와줬구나….’
‘입 닥쳐 그 더러운 입으로 날 부르지마, 말해봐, 언제부터였어?’
‘무슨….’
‘다 알고 왔으니 수작 부리지 마.
당장 반으로 갈라 죽이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거야. 똑바로 대답해.’
무, 무서워..!
저렇게 이쁘게 생겨놓고 너무 무섭게 말한다…. 나는 크면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내 말 때문일까? 착하게 생겼지만 무서운 아저씨의 얼굴이 달라진다.
이젠 무섭게 생긴 무서운 아저씨가 돼버렸다…!
‘아, 이걸 들킨 건가…? 아쉽네 아주 조금만 더했으면 됐을 텐데.’
‘당신…!’
‘그래도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뿌득 뿌득-
무서운 아저씨한테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났다. 몸이 점점 달라지는 게 너무 징그러웠다.
‘너무 늦었어 설아야. 진작 눈치챘어야지.’
아저씨의 몸이 점점 커진다. 나는 싸울 생각인지 아저씨한테 달려간다.
아까와 같은 이쁜 검이었지만, 아저씨한테는 안 통했다.
‘뭣…!’
내가 깜짝 놀라 한다. 그리곤 아저씨의 몸에서 뭔가 튀어나오더니…!
히익!
내 몸을 찔렀어…!! 뭔가 날카로운 것이 내 몸을 꿰뚫었다.
아까 빠르게 움직이던 것과 달리 아저씨의 공격은 못 피했나 보다.
아저씨는 그대로 날 내팽개쳤다. 쿵! 하고 날아가더니 벽에 박혀버렸다.
너무 무서웠다. 너무 징그러워서 보기 싫어서 꿈에서 깨고 싶었다.
빨리 일어나란 말이야…! 이런 거 보기 싫어…. 제발…!!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너무 무서운 꿈이었다.
몸을 뚫린 꿈속의 내가 점점 죽어간다.
할아버지를 부르고 싶었다. 할아버지라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할아버지는 강한데.
그때 꿈속의 내가 뭐라고 말한다.
뭐라고 하는 걸까.
‘...안해.’
너무 작아서 안 들리는 말이었다.
저 멀리 무서운 아저씨가 다가온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무서운 아저씨가 내 앞에 오더니 말했다.
‘참 멍청하지? 설아 너도, 그놈도. 특히 그놈이 제일 병신같아, 고작 그깟 놈이 누굴 위한다고.’
아저씨의 말에 내가 눈물을 흘린다.
그놈이 누굴까. 누굴 말하는 걸까. 내 꿈인데 내가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아저씨가 또 나한테 뭔가 하려고 한다. 아까 날 찔렀던 칼같은 거였다.
‘가서 보게 된다면 전해줘, 너는 참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다고.’
‘미안해…. 미안해.’
아저씨의 말에 내가 사과를 했다. 근데 아저씨한테 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누구한테 하는 걸까…?
이어서 아저씨가 날카로운걸 나한테 휘두른다.
나는 보기 싫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히이익!”
다행히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등이 축축했다. 다 땀인 거 같았다.
옆을 보니 할아버지 자리가 비어있다. 이미 나가서 일하고 계신가보다.
꿈이 너무 무서웠다. 진짜 겪었던 일 같아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이상하게 문득 도련님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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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문을 다녀오고 다음 날이 되었다.
먹은 만두양이 좀 많았기에 일어나서 하체나 한번 조져볼까 싶은 참이었다.
“구절엽이라고 합니다. 본가의 혈족께 대련을 요청합니다.”
근데 이놈은 또 뭐지…?
방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놈이 대뜸 말했다.
나이를 측정해보자면 나와 비슷한 또래 같고 날렵한 턱선에 구가 특유의 싸가지 없는 눈매가 눈에 들어온다.
재수 없는 것은 심하게 미남자라는 것이었다. 성씨가 구 씨라거나 눈매나 눈동자가 붉은 것이 구가의 혈족임을 증명하는 듯했으나.
최소한 가주의 혈족은 아니었다.
순간 아버지의 숨겨놓은 아들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아는 한에는 없었다.
“누구?”
그래서 누굴까. 어딘가 익숙한 얼굴인 듯했으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몰라 의문을 표하자 구절엽인지 구철엽인지 하는 이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실수했나? 근데 진짜 모르겠는데….
내 의문은 대뜸 나타난 이장로가 해결해줬다.
“절엽이 아니냐,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당신은 왜 여깄는데 이 노인네야….
요즘 들어 자주 보이는 것 같은 이장로가 신경 쓰였으나 말을 꺼내봤자 귓등으로도 안 들어줄 게 뻔하니 굳이 꺼내진 않았다.
구절엽은 이장로를 보고 예를 취했다.
“이장로를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한 일 년만인가?”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노부는 항상 잘 지내지 하하하하! 너도 잘 지냈느냐?.”
“...아니 갑자기 제 처소에서 담소 나누지 마시라고요.”
그래서 누군데.
내가 계속 갸우뚱거리고 있으니 이장로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양천아, 정말 누군지 몰라보겠느냐?”
“그래서 이제 한 세 번쯤 의문을 가지는 중입니다.”
“이걸 어찌해야 할꼬, 기억력이 물고기만도 못하구나.”
이 노인네는 왜 갑자기 아침부터 시비를 거는 걸까…?
“절엽이가 누구긴. 일장로의 손자 아니냐.”
이장로의 말에 내가 구절엽을 쳐다봤다. 일장로라고 하면….
‘그 깐깐하고 재수 없는 노인네.’
태령열검(兌零熱劍) 구창준. 아버지에겐 백부, 내겐 종조 되는 이었으나.
그다지 좋은 감상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당장 날 찾아온 이장로는 부담스러움이 앞서있지만, 그 뒤에는 분명 감사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가 손에 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장로는 다르다.
할 말은 많지만, 딱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무튼, 일장로님 손자라고요?”
“서로 몇 번 봤을 텐데 모르느냐?”
그렇게 말해도 까마득한 기억이었다. 상대방은 날 기억하고 있는 듯했으나, 나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게 기분이 나쁜지 구절엽이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걸 보고 내가 얼른 사과했다.
“아니, 미안합….”
“그러시겠죠, 그렇게 호되게 당하셨으니 창피함에 잊고 싶으실 만합니다.”
뭐, 이새끼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때 모습 그대로시라니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만, 여전히 실망스럽네요.”
“이장로님.”
“...왜 그러냐?”
“얘 일장로님 손자 맞나봐요, 똑같네! 아주.”
“....”
이장로는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공감을 아주 깊이 하는 느낌이었다.
기억 속에 있는 일장로랑 아주 똑같았다. 내가 뭐라 하든 딱히 관심이 없는 듯 말을 잇는다.
“후우우우,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성정에 맞지 않으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한번 본가의 혈족께 대련을….”
“도련님…!!”
구절엽의 말을 끊고 나타난 것은 위설아였다.
“미친.”
위설아는 왠지 모르겠으나 반쯤 젖어있었다. 젖어있는 옷에 위설아의 살결이 비치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심지어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나는 곧바로 담요를 집어 들고 위설아에게 칭칭 감았다.
“뭐 하는 거야! 남들 보면 어쩌려고.”
“도련님! 제가 있잖아요…. 꿈을 꿨는데 말이에요….”
“일공자님.”
구절엽이 말을 전하려던 위설아의 말을 끊었다. 시선을 구절엽에게 옮기니 놈의 두 눈이 위설아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구절엽의 흔들리는 동공과 살짝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이분은 누구십니까?”
...이 새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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