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17화
페이지 정보
본문
EP.17 필요하다면 (2)
필요하다면 (2)
서찰을 품에 넣은 채 무연과 함께 저잣거리에 나왔다.
저번과 같은 거리를 걸었으나, 저번처럼 숨이 헐떡거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수련 좀 했다고 조금씩 나아진게 느껴졌다.
‘그거 걸었다고 죽을라 그러던게 이상한 거지.’
픽 한 번 웃고는 골목길을 지나쳐 들어갔다.
조금 더 걸으니 저번에 봤던 허름한 건물이 보인다. 저번에 갔던 하오문 산서 지부다.
도착했을 때 저번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전에 연기하던 왈가패같은 문도들이 지부장이 입고 있던 것과 같은 문도복을 입고 날 맞이했다는 것이다.
건물로 다가가니 누군가 내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구 공자님.”
“뭐야? 이번엔 깔끔하게 입었네.”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내게 욕지거릴 뱉던 사내였다. 산발인 머리를 묶고 깔끔한 옷을 챙겨입으니 다른 사람 같았다.
“그건 상관없는데, 어디로 가면 되지. 저번과 같이 지하로 가면 되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공자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니 계단을 타고 지부장 도운추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저번과 다르네, 이번엔 바로 나타나는 것이.”
“소중한 고객님께 감히 그럴 수 있나요. 바로 나타나야지요.”
“그럼 전엔 고객이 아니었다는 건가?”
의미 없는 꼬투리에 도운추는 웃기만 했다.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하자면 더 말할 수 있겠으나, 내 입장에서도 빨리 일정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우선이었다.
도운추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허름한 건물에 먼지 날리는 1층과 달리 2층은 상당히 깔끔했다.
자리에 앉고 곧바로 하오문도가 내게 차를 가져다줬지만, 무연이 제지했다.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무연의 행동의 문도가 순간 언짢은 표정을 짓자 도운추가 지적했다.
“표정 관리 똑바로 해, 중요한 고객님 앞이야.”
싸늘한 목소리다.
“...죄송합니다. 지부장님.”
“사과는 내가 아니라 공자님께 드리도록.”
“죄송합니다. 공자님.”
나는 대충 손을 휘저어 괜찮다고 표시를 하고 도운추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귀찮네….’
어차피 이들이 지금 하는 행동은 전부 쓸데없는 연기였다.
무연이 이런 행동을 할 거란 것도 진작 알고 있었겠지.
도운추가 곧바로 제지하며 문도에게 잘못을 지적한 것도.
문도의 말실수를 똑바로 정정한 것도 어차피 연기인 걸 알고 있었다.
내게 예를 갖추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지, 대화의 승기를 선점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지 나로선 짜증 나고 귀찮은 행동이었다.
“뭘 보여주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아까운 시간만 날리는 중이니까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지 지부장?”
쓸데없는 연극은 사절이다.
짜증을 섞어 뱉은 말에 도운추가 멈칫했다. 잘 보이지 않는 실눈이라 표정을 읽기는 힘들었으나 이 정도면 말이 전해졌으리라.
도운추가 이내 한숨을 뱉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공자님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부터 수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맞을 테니 굳이 바꾸려 들지 않아도 돼.”
도운추가 앞에 놓인 차를 조용한 한 모금 마시더니 그제야 본론을 꺼내 들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의뢰, 저희가 해결해 드리면 어디까지 알려 주실 겁니까?”
“어디까지? 다 알려달라는 말은 안 하네?”
“저희는 정보를 사고파는 이들입니다. 공자님이 가지고 계신 정보의 가치는 누구보다 저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문의 중요 인원들이 찾아 헤매도 찾을 수 없던 이의 행방.
지금은 그런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나는, 이런 정보를 한 번에 뱉을 생각이 없었다.
하오문주 탈환이 벌어지는 것은 몇 년 뒤의 얘기다.
물론 작전 도중 하오문주가 사망하게 되지만 정보만 따지면 적어도 몇 년간은 하오문주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걸 물론 도운추를 모를 것이니 사실 굉장히 다급한 상황이겠지.
‘도운추가 하오문주와 무슨 관곈지 모르지만, 과거의 정보에 따라 도운추가 다음 하오문주가 된다면 깊게 엮인 관계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탈환 작전을 주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한데 도운추는 그런 상황에서도 급한 모습이나 조급한 모습을 내게 보이지 않고 있다.
철저히 숨기고 있는지, 그저 정보로써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나로선 거기까지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 필요가 없었다.
도운추가 하오문주와 무슨 관계든 도운추가 무슨 생각을 하든 문제가 아니었다.
혹 중요한 관계라면.
그것까지 이용해야 했다.
‘필요하다면, 말이지….’
“애초에 지부장, 내 말을 믿기는 하는 거야?”
나 같아도 약관도 되지 못한 꼬맹이가 대뜸 이렇게 나타나면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물음에 도운추가 웃었다.
“그런 의심은 물불 가릴 처지에나 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저번에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면야, 정보에 관한 것은 부족함 없이 말해줄 테니 걱정하지마.”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도운추는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부연 설명만 붙일 뿐이다.
“의뢰 기간은 한 달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빠르면 더 빠르게 끝낼 수 있지만, 아마 이보다 늦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달이라.”
그쯤이 되면 아마 여름이 돼 있을 것이다. 따져볼 때 그다지 긴 기다림은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문득 도운추가 말했다.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문주님께선….”
도운추가 말을 끊었다. 아마 문주의 생사에 대해 물어보려던게 아니었을까.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도운추에겐 중요할지 모를 얘기지만, 이건 분명 지금 불필요한 말이었다.
도운추에게 말했다.
“그거, 지금 지부장한테 도움 안 되는 말이었다는 거 알고 있지?”
내가 도운추와 하오문주가 근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연히 짐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운추의 말은 내게 확신을 줄 만한 말이었다.
물론 하오문인 것을 생각하면 저것조차 연기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도운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조급함에 나온 실수일까 계산된 일일까.
인피면구를 쓰고 있을 테니 표정으론 알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표정으로 드러날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나는 잠깐의 고민을 끝내곤 도운추에게 말 했다.
“예적산맥.”
내 말에 도운추의 눈이 살짝 커진다.
남쪽에 자리 잡은 거대한 산맥의 이름, 정확히 하오문주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흑야궁의 지부중 한 곳이다.
‘정확히 산맥 어디에 있는진 모르지만.’
왜 굳이 여길 꼽아 말했냐면, 이 지부에 도운추가 필요로 할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보증금이야,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었다.
“혹시 확인할 거라면 진법가는 데려가는 게 좋을 거야.”
흑야궁에서 아무 대책도 안 해놓았을 리 없었다.
무림맹이 흑야궁의 본거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던 것도 다 진법의 영향이었으니까.
우선 이것으로 얘기는 끝이었다.
나는 도운추를 뒤로하고 세가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한 달이라.’
마냥 기다리기엔 조금 긴 시간이었다.
******************
다시 저잣거리에 나와 세가로 가는 길, 이제는 습관처럼 약과를 사고 있었다. 당연히 위설아에게 줄 것이었다.
나뿐 아니라 처소의 사용인들이 모두 위설아에게 군것질 거릴 주니 위설아는 첫 만남 때와 달리 살이 조금 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걸음을 옮기는데 바람이 불었다.
“아직은 봄이라 시원한데…. 다음 달부터는 다시 여름이라 또 죽어가겠네요.”
무연의 말이었다.
한 달 뒤면 어느덧 초여름이다. 다음 달이면 무연의 말처럼 벌써 여름이 올 것이었다.
‘여름이라….’
뭔가 생각 날 듯 말 듯 가물가물한 것이 머릿속을 헤집어놔서 찝찝했다.
뭐가 이렇게 찜찜하지?
뚝.
세가로 걷던 발을 멈춰세웠다. 안개 낀 듯 막막하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이 시기의 여름이라면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게 왜 지금 떠오르지?”
무가이면서 옛과거 제일 상단을 운영했던 금천연가의 비고가 발견되는 시기가 지금쯤이었다.
비고의 최초의 발견자는 사천당문이었으나, 결국 비고를 획득한 이는 다름 아닌 사천의 계천문이라는 사파였다.
당가와 계천문 두 곳 모두 사천에 있어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마교가 나타나면서 계천문은 마교로 들어가게 된다.
‘금천연가의 비고 또한 사천에 있지.’
....글러 먹었네.
위치와 시기를 생각하며 혀를 짧게 찼다.
비고의 발견은 늦여름이고, 끝내 계천문의 손에 들어갈 바에 내가 차지할 수 있다면 차지하고 싶었으나. 지역이 문제였다.
‘당장 사천에 갈 방법이 없다.’
하오문이 야기한 기한은 한 달, 시간은 충분하니 방법만 있다면 그 안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머나먼 사천까지 다녀올 핑곗거리가 없었다.
여행이라도 떠나야 한다 해야 할까?
‘세가에서 허락할 리가 있나.’
대뜸 사천에 보물이 숨겨져 있어 가서 가져와야겠다는데 그게 먹힐 리가 없었다.
금천연가의 비고에는 막대한 금은보화는 없었을지언정, 쉽게 볼 수 없는 값진 영단들이 많았다 했다.
계천문주가 마인이 되기 전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이유도 이 덕이라 하였으니까.
‘적어도 계천문이 가져가는 건 막고 싶은데.’
내가 가지진 못해도 마인이 될 이들의 손에 넘기고 싶진 않았다.
물론 내가 가지면 더 좋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개방에다 정보를 뿌려버릴까.”
이걸 말한다고 믿는 이는 적겠지만, 시기를 앞당겨 흐름을 비틀 수는 있을지 몰랐다. 당장 개방에다가 말한들 소문이 날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저런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머뭇거리는 이유는 단순히 욕심이었다.
회귀라는 기회를 얻어 그저 평탄히 살아가고자 생각했으면서 코앞에 보물단지가 있다 하니 손을 뻗으려 든다.
“미친놈 또 이러네, 안될 걸 알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전생에 그렇게 몸으로 맞으며 배워놓고도 바라는 게 여전히 턱없이 높구나.
그러게 갑자기 왜 떠올려서 사람 배 아프게 말이야….
괜히 허탈한 마음만 가득해졌다. 아쉬운 대로 먹을 거라도 사갈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김이 폴폴 나는 만둣집이 보여 곧바로 발을 옮겼다. 저번에 먹은 만두가 맛있어 기억에 남은 탓이었다.
“도련님 만두도 사가시게요?”
“저번에 먹은 만두가 맛있더라고.”
“근데 아까 약과 사실 때 가져오신 돈 다 쓰셨다고…?”
“내줘.”
“예?”
“내줘.”
“예….”
미안하다.
그렇게 울적한 표정 짓지 마. 가서 준다니까?
‘생각해보니 저번에 대신 산 것도 안 준거 같기도 하고….’
서글피 품에서 엽전을 꺼내는 무연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이번엔 진짜 줘야지.’
진짜, 정말 이번엔 줄 생각이었다.
진짜로….
만두를 산 다음 세가로 돌아갔다.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내가 처소 입구에 들어서자 내 겉옷을 받으려 위설아가 콩콩 뛰어오기에 옷과 함께 약과를 건네줬다.
약과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다른 시종들에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역시 잘 사온 것 같아 뿌듯했다.
‘금천연가 일은 아쉽지만,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잖아.’
원래 없던 것을 아쉬워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었다.
방법이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한데.
“구절엽이라고 합니다. 본가의 혈족께 대련을 요청합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내게 직접 찾아올줄은 몰랐다.
필요하다면 (2)
서찰을 품에 넣은 채 무연과 함께 저잣거리에 나왔다.
저번과 같은 거리를 걸었으나, 저번처럼 숨이 헐떡거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수련 좀 했다고 조금씩 나아진게 느껴졌다.
‘그거 걸었다고 죽을라 그러던게 이상한 거지.’
픽 한 번 웃고는 골목길을 지나쳐 들어갔다.
조금 더 걸으니 저번에 봤던 허름한 건물이 보인다. 저번에 갔던 하오문 산서 지부다.
도착했을 때 저번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전에 연기하던 왈가패같은 문도들이 지부장이 입고 있던 것과 같은 문도복을 입고 날 맞이했다는 것이다.
건물로 다가가니 누군가 내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구 공자님.”
“뭐야? 이번엔 깔끔하게 입었네.”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내게 욕지거릴 뱉던 사내였다. 산발인 머리를 묶고 깔끔한 옷을 챙겨입으니 다른 사람 같았다.
“그건 상관없는데, 어디로 가면 되지. 저번과 같이 지하로 가면 되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공자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니 계단을 타고 지부장 도운추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저번과 다르네, 이번엔 바로 나타나는 것이.”
“소중한 고객님께 감히 그럴 수 있나요. 바로 나타나야지요.”
“그럼 전엔 고객이 아니었다는 건가?”
의미 없는 꼬투리에 도운추는 웃기만 했다.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하자면 더 말할 수 있겠으나, 내 입장에서도 빨리 일정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우선이었다.
도운추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허름한 건물에 먼지 날리는 1층과 달리 2층은 상당히 깔끔했다.
자리에 앉고 곧바로 하오문도가 내게 차를 가져다줬지만, 무연이 제지했다.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무연의 행동의 문도가 순간 언짢은 표정을 짓자 도운추가 지적했다.
“표정 관리 똑바로 해, 중요한 고객님 앞이야.”
싸늘한 목소리다.
“...죄송합니다. 지부장님.”
“사과는 내가 아니라 공자님께 드리도록.”
“죄송합니다. 공자님.”
나는 대충 손을 휘저어 괜찮다고 표시를 하고 도운추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귀찮네….’
어차피 이들이 지금 하는 행동은 전부 쓸데없는 연기였다.
무연이 이런 행동을 할 거란 것도 진작 알고 있었겠지.
도운추가 곧바로 제지하며 문도에게 잘못을 지적한 것도.
문도의 말실수를 똑바로 정정한 것도 어차피 연기인 걸 알고 있었다.
내게 예를 갖추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지, 대화의 승기를 선점하고 싶어서 이러는 건지 나로선 짜증 나고 귀찮은 행동이었다.
“뭘 보여주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아까운 시간만 날리는 중이니까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지 지부장?”
쓸데없는 연극은 사절이다.
짜증을 섞어 뱉은 말에 도운추가 멈칫했다. 잘 보이지 않는 실눈이라 표정을 읽기는 힘들었으나 이 정도면 말이 전해졌으리라.
도운추가 이내 한숨을 뱉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공자님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부터 수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맞을 테니 굳이 바꾸려 들지 않아도 돼.”
도운추가 앞에 놓인 차를 조용한 한 모금 마시더니 그제야 본론을 꺼내 들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의뢰, 저희가 해결해 드리면 어디까지 알려 주실 겁니까?”
“어디까지? 다 알려달라는 말은 안 하네?”
“저희는 정보를 사고파는 이들입니다. 공자님이 가지고 계신 정보의 가치는 누구보다 저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문의 중요 인원들이 찾아 헤매도 찾을 수 없던 이의 행방.
지금은 그런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나는, 이런 정보를 한 번에 뱉을 생각이 없었다.
하오문주 탈환이 벌어지는 것은 몇 년 뒤의 얘기다.
물론 작전 도중 하오문주가 사망하게 되지만 정보만 따지면 적어도 몇 년간은 하오문주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걸 물론 도운추를 모를 것이니 사실 굉장히 다급한 상황이겠지.
‘도운추가 하오문주와 무슨 관곈지 모르지만, 과거의 정보에 따라 도운추가 다음 하오문주가 된다면 깊게 엮인 관계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탈환 작전을 주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한데 도운추는 그런 상황에서도 급한 모습이나 조급한 모습을 내게 보이지 않고 있다.
철저히 숨기고 있는지, 그저 정보로써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나로선 거기까지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 필요가 없었다.
도운추가 하오문주와 무슨 관계든 도운추가 무슨 생각을 하든 문제가 아니었다.
혹 중요한 관계라면.
그것까지 이용해야 했다.
‘필요하다면, 말이지….’
“애초에 지부장, 내 말을 믿기는 하는 거야?”
나 같아도 약관도 되지 못한 꼬맹이가 대뜸 이렇게 나타나면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물음에 도운추가 웃었다.
“그런 의심은 물불 가릴 처지에나 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저번에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면야, 정보에 관한 것은 부족함 없이 말해줄 테니 걱정하지마.”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도운추는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부연 설명만 붙일 뿐이다.
“의뢰 기간은 한 달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빠르면 더 빠르게 끝낼 수 있지만, 아마 이보다 늦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한 달이라.”
그쯤이 되면 아마 여름이 돼 있을 것이다. 따져볼 때 그다지 긴 기다림은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문득 도운추가 말했다.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문주님께선….”
도운추가 말을 끊었다. 아마 문주의 생사에 대해 물어보려던게 아니었을까.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도운추에겐 중요할지 모를 얘기지만, 이건 분명 지금 불필요한 말이었다.
도운추에게 말했다.
“그거, 지금 지부장한테 도움 안 되는 말이었다는 거 알고 있지?”
내가 도운추와 하오문주가 근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연히 짐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운추의 말은 내게 확신을 줄 만한 말이었다.
물론 하오문인 것을 생각하면 저것조차 연기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도운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조급함에 나온 실수일까 계산된 일일까.
인피면구를 쓰고 있을 테니 표정으론 알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표정으로 드러날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나는 잠깐의 고민을 끝내곤 도운추에게 말 했다.
“예적산맥.”
내 말에 도운추의 눈이 살짝 커진다.
남쪽에 자리 잡은 거대한 산맥의 이름, 정확히 하오문주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흑야궁의 지부중 한 곳이다.
‘정확히 산맥 어디에 있는진 모르지만.’
왜 굳이 여길 꼽아 말했냐면, 이 지부에 도운추가 필요로 할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보증금이야,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었다.
“혹시 확인할 거라면 진법가는 데려가는 게 좋을 거야.”
흑야궁에서 아무 대책도 안 해놓았을 리 없었다.
무림맹이 흑야궁의 본거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던 것도 다 진법의 영향이었으니까.
우선 이것으로 얘기는 끝이었다.
나는 도운추를 뒤로하고 세가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한 달이라.’
마냥 기다리기엔 조금 긴 시간이었다.
******************
다시 저잣거리에 나와 세가로 가는 길, 이제는 습관처럼 약과를 사고 있었다. 당연히 위설아에게 줄 것이었다.
나뿐 아니라 처소의 사용인들이 모두 위설아에게 군것질 거릴 주니 위설아는 첫 만남 때와 달리 살이 조금 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걸음을 옮기는데 바람이 불었다.
“아직은 봄이라 시원한데…. 다음 달부터는 다시 여름이라 또 죽어가겠네요.”
무연의 말이었다.
한 달 뒤면 어느덧 초여름이다. 다음 달이면 무연의 말처럼 벌써 여름이 올 것이었다.
‘여름이라….’
뭔가 생각 날 듯 말 듯 가물가물한 것이 머릿속을 헤집어놔서 찝찝했다.
뭐가 이렇게 찜찜하지?
뚝.
세가로 걷던 발을 멈춰세웠다. 안개 낀 듯 막막하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이 시기의 여름이라면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게 왜 지금 떠오르지?”
무가이면서 옛과거 제일 상단을 운영했던 금천연가의 비고가 발견되는 시기가 지금쯤이었다.
비고의 최초의 발견자는 사천당문이었으나, 결국 비고를 획득한 이는 다름 아닌 사천의 계천문이라는 사파였다.
당가와 계천문 두 곳 모두 사천에 있어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마교가 나타나면서 계천문은 마교로 들어가게 된다.
‘금천연가의 비고 또한 사천에 있지.’
....글러 먹었네.
위치와 시기를 생각하며 혀를 짧게 찼다.
비고의 발견은 늦여름이고, 끝내 계천문의 손에 들어갈 바에 내가 차지할 수 있다면 차지하고 싶었으나. 지역이 문제였다.
‘당장 사천에 갈 방법이 없다.’
하오문이 야기한 기한은 한 달, 시간은 충분하니 방법만 있다면 그 안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머나먼 사천까지 다녀올 핑곗거리가 없었다.
여행이라도 떠나야 한다 해야 할까?
‘세가에서 허락할 리가 있나.’
대뜸 사천에 보물이 숨겨져 있어 가서 가져와야겠다는데 그게 먹힐 리가 없었다.
금천연가의 비고에는 막대한 금은보화는 없었을지언정, 쉽게 볼 수 없는 값진 영단들이 많았다 했다.
계천문주가 마인이 되기 전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이유도 이 덕이라 하였으니까.
‘적어도 계천문이 가져가는 건 막고 싶은데.’
내가 가지진 못해도 마인이 될 이들의 손에 넘기고 싶진 않았다.
물론 내가 가지면 더 좋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개방에다 정보를 뿌려버릴까.”
이걸 말한다고 믿는 이는 적겠지만, 시기를 앞당겨 흐름을 비틀 수는 있을지 몰랐다. 당장 개방에다가 말한들 소문이 날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저런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머뭇거리는 이유는 단순히 욕심이었다.
회귀라는 기회를 얻어 그저 평탄히 살아가고자 생각했으면서 코앞에 보물단지가 있다 하니 손을 뻗으려 든다.
“미친놈 또 이러네, 안될 걸 알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전생에 그렇게 몸으로 맞으며 배워놓고도 바라는 게 여전히 턱없이 높구나.
그러게 갑자기 왜 떠올려서 사람 배 아프게 말이야….
괜히 허탈한 마음만 가득해졌다. 아쉬운 대로 먹을 거라도 사갈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김이 폴폴 나는 만둣집이 보여 곧바로 발을 옮겼다. 저번에 먹은 만두가 맛있어 기억에 남은 탓이었다.
“도련님 만두도 사가시게요?”
“저번에 먹은 만두가 맛있더라고.”
“근데 아까 약과 사실 때 가져오신 돈 다 쓰셨다고…?”
“내줘.”
“예?”
“내줘.”
“예….”
미안하다.
그렇게 울적한 표정 짓지 마. 가서 준다니까?
‘생각해보니 저번에 대신 산 것도 안 준거 같기도 하고….’
서글피 품에서 엽전을 꺼내는 무연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이번엔 진짜 줘야지.’
진짜, 정말 이번엔 줄 생각이었다.
진짜로….
만두를 산 다음 세가로 돌아갔다.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내가 처소 입구에 들어서자 내 겉옷을 받으려 위설아가 콩콩 뛰어오기에 옷과 함께 약과를 건네줬다.
약과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다른 시종들에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역시 잘 사온 것 같아 뿌듯했다.
‘금천연가 일은 아쉽지만,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잖아.’
원래 없던 것을 아쉬워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었다.
방법이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한데.
“구절엽이라고 합니다. 본가의 혈족께 대련을 요청합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내게 직접 찾아올줄은 몰랐다.
- 이전글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18화 24.09.21
- 다음글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16화 24.09.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