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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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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2회 작성일 24-09-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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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구룡회(2)

구룡회 (2)

구룡회가 시작하기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각. 나는 웬 곰 같은 사내에게 붙잡혀 있었다.

사내가 내게 말했다.

“이번엔 어찌 도망치지 않았구나.”

사람을 태산(泰山)이라 부른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적어도 팔 척은 돼 보이는 키와 쫙 벌어진 어깨에서 오는 거대한 위압감이 일품이다.

새하얗게 물든 백발과 얼굴 곳곳에 보이는 주름이 그가 겪은 세월을 말하고 있으나.

감히 노인이라 부르기엔 아직은 무인이란 말이 어울릴 사람.

그는 구가의 이장로 구륜이었다.

“뺀질나게 이 노부만 보인다 싶으면 발만 빼던 놈이 어찌 여긴 행차하였느냐?”

“안 나타나면 반으로 접어버린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리고 구룡회를 어떻게 뺍니까?”

“어쭈? 이젠 말대답까지 하는구나.”

사납게 말하며 이장로가 거대한 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린다.

예전부터 이장로는 유독 내게 집착 아닌 집착을 했다. 가주의 유일한 아들이란 점이 아마 가장 크겠지.

힘 조절을 안 하는지 머릴 헝클일 때마다 나도 이장로의 손에 따라 같이 움직인다.

‘토, 토할거같….’

내가 실신 직전까지 갈 때쯤 구연서가 나타났다. 나한텐 한 줄기 빛이었다.

구연서는 휘둘리는 날 보고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이장로에게 예를 차렸다.

“이장로를 뵙습니다.”

“오! 우리 연서도 있었구나!”

구연서를 보곤 흔들던 나를 놓더니 품에서 대뜸 꺼내 든 것이 약과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이 말썽꾸러기 놈은 하여튼 귀여운 날이 없구나, 연서는 멀리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할애비가 급하게 오느라 챙겨온 것은 없고…. 약과라도 먹으련?”

품에서 건넨 약과를 보고 구연서가 살짝 굳었다. 그리곤 살짝 미소지으며 약과를 거절한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속이 좋지 못한지라….”

“이런…! 의원을 불러야겠구나!”

“아닙니다 이장로님, 구룡회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 걸 겁니다. 약과는 다음 기회에 감사히 받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더니 구연서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떠났다.

“누구랑 다르게 아주 참하고 예의 바르는구나.”

“저는 많이 흔들려서 그런지 기절할 것 같은데 의원을 좀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그런건 침 바르면 낫는다 조용히 하거라.”

...뭐지 이 되도 않는 차별은?

살짝 억울했지만, 워낙 특이한 성격인 사람이었으니 그런갑다 했다.

“이장로님, 그 약과 안 드실 거면 저나 좀 주십쇼.”

“내 예전부터 말했지만, 너는 좀 덜 먹을 필요가 있어. 무가의 자식이란 놈이 약과나 탐내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냐.”

“아니, 방금 무가의 자식한테 약과 주시려던 분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고 약과랑 무가랑 무슨 상관이라고….”

“연서는 먹고 꾸준한 수련을 하지 않느냐, 먹고 싸고 자기만 하는 놈이 무슨.”

“제가 먹을 거 아니니 괜찮습니다.”

그리 말하며 이장로에게 약과를 챙겼다. 당연하게도 위설아에게 줄 것이었다.

어느새 약과만 보면 위설아가 떠오르게 돼버렸다. 맛있게 먹는 걸 봐서 그런가?

약과를 챙기니 멀리 위설아가 다른 시종과 함께 오는 게 보인다.

시종들은 나와 이장로를 보고 예를 취하니 위설아도 동작을 따라 했다.

이장로가 괜찮다고 손짓을 살짝 흔드니 다들 자세를 폈다.

위설아는 곧이어 총총 걸으며 내게 다가왔다.

“도련님! 밖에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

“그렇겠지, 나름 축제니까.”

“만두도 팔고! 꼬치도 팔고! 국수도 팔아요!”

“...방금 사람이 많다 하지 않았어? 왜 다 음식 얘기야?”

“그치만 만두가…!”

위설아는 신나서 얘기하다 깜짝 놀라 내 뒤에 숨었다.

뭔가 싶어서 뒤돌아보니 이장로가 묘한 눈으로 위설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팔 척이 넘는 거대한 덩치로 내려다보는 것이 심히 무서웠다.

하물며 구가의 핏줄은 대대로 눈매가 사납기 때문에 인상으론 좋은 얘길 못 듣는 집안이었다.

“...장로님 그렇게 계시면 사람들이 겁 먹습니다.”

“흠….”

“왜 그러십니까?”

“저 아이가 네 첩실이냐?”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옷 보십쇼 장로님. 시종입니다.”

가솔들 중에서도 혈족의 시종들은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위설아도 마찬가지고.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아니라고 하니 흥미를 잃었다는 듯 이장로가 자리를 뜬다. 곳 있으면 해가 저물기에 정말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위설아에게 약과를 건네줬다.

“이거 먹고 얌전하게 있어.”

“어? 아까도 먹었는데….”

“왜? 맛있다며, 약과가 질렸어?”

“아니요…. 할어부지가 하루에 다섯 개 이상 먹지 말라고 한 걸요.”

“...대체 언제 다섯 개나 먹은 거야?”

나는 마차에서 하나만 준 것 같은데? 내가 시종들 쪽을 흘겨보니 다들 뭔가 시선을 피하는 느낌이었다.

“저쪽이었구만….”

내 간식을 건든 것은 아닐 테니 각자 사비를 써서 먹인 걸 것이다.

우선 약과는 가지고 있다 먹든지 내일 먹든지 하라고 하고, 나 또한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딱히 준비랄게 없긴 했다. 그저 구가의 상징인 붉은 도포를 몸에 둘렀을 뿐이니.

해가 저물며 노을이 질 때쯤 회장 곳곳에 등불이 켜졌다.

회장 중앙에 이장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나와 구연서가 서 있다.

구룡회인 만큼 혈족들은 참가해야 했으나, 막내는 세가에 없고 첫째 또한 검대일 탓에 없는 상태니 나와 구연서 뿐이었다.

원칙상 가주가 직접 구룡회에 참석하는 게 맞으나 진마경문을 다녀온 탓에 세가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가주 직속인 일검대 또한 마찬가지고.

고로 현재 참가 중인 검대는 장기 임무를 떠나있는 오검대와 가주 직속 일검대를 제외한 이검대와 삼, 사검대 뿐이다.

올해 첫 구룡회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인원이었다.

‘천일상가 덕분에 크기는 최대지만.’

인원보다 회장의 규모가 정말 너무 크긴 했다.

덕분에 구경하는 이들이 많이 들어 올 수 있었으나 너무 북적거리는 통에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를 일이다.

물론 구가의 검대가 집합해있는 상태에서 사고를 치는 미친놈은 없을 테지만.

이장로와 구연서,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서 앞에 모인 백여 명의 이들은 구가의 검대였다.

얕은 무장을 했음에도 뿜어지는 날 선 기운은 그들이 한명 한명 뛰어난 무인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각 검대의 대주는 앞으로.”

이장로는 장난기가 가득하던 아까의 모습은 어디 가고, 한 세가의 장로의 위엄을 다음 모습이었다.

짧게 뱉은 말은 그의 몸에 쌓인 내공이 담겨 회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장로의 말에 따라 앞에 나열되어있던 수많은 검대중 몇 인원이 이장로의 앞으로 나섰다.

“이검대주 대리 우안선! 구가의 장로님을 뵙습니다.”

“삼검대주 마철현, 이장로를 뵙습니다.”

“사검대주 대리 혁주염, 이장로를 뵙습니다.”

검대 대주 한 명의 대주 대리가 둘.

대주 여럿이 자리를 한 번에 비우게 되면 나올 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 배치된 일이었다.

물론 검대끼리 각자 합의된 부분이었다.

이장로는 검대원들의 모습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을 잇는다.

“구가와 양민을 위해…….”

이어진 말들은 너무 길었기에 중간에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굳이 축약하자면 아무튼 고생했다. 앞으로 고생해라. 그리고 고생했으니 보상을 주겠다. 였다.

각 검대에게 보내지는 보상으론 적지 않은 영약과 매달 지원되는 봉급에 곱절이 되는 금액이었다.

검대원들에겐 그러한 물품보단 이장로가 건네는 말들이 더 감동적인 것 같았다.

나로선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나와 구연서의 역할은 그저 서 있는 것뿐이다. 혈족으로서 당신들의 고생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형식적인 모습이었으나.

이는 검대의 사기를 위해선 필요한 일이리라.

“...그대들의 노고 감사를 표한다.”

정신이 들 때쯤 마침 이장로의 말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장로가 감사를 표하자 검대원들은 물론이고 구경하던 사람들 까지 모두 박수를 친다.

하늘을 잠시 보니 어느덧 하는 다 저문 상태였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 구룡회의 일정 중 첫날이 끝나가는 것이다.

‘다행히 별 귀찮은 일은 없었네.’

구가의 정예가 모인 자리에서 귀찮은 일을 터트리겠냐마는 나름 항상 주의하는 부분이었다.

이 부실한 머리통은 모든 걸 기억하지 못했다.

중원 무림이 한 번 들썩일 만큼 큰 사건들이야 기억하지만, 유독 지금 시절의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어린 시절이니 잘 기억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행복했던 기억을 남기고자 일부러 기억을 잊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이번 구룡회에선 별일 없었던 거 같은데.’

겨울날 있을 ‘사고’에 대해선 기억하고 있으나, 적어도 봄날에 구룡회엔 별 기억이 없었다.

박수갈채가 끝나갈 무렵, 천일상가 일원들 안내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

******************

밤이 되어 남은 시간은 구가의 검대를 위한 작은 축제였다.

축제랄까 그냥 천일상가에서 준비한 수많은 음식과 주류가 가득했다.

대주와 대리들은 주류를 보고 부디 혹할까 빼달라 하였으나, 오늘 날의 만큼은 마시라며 이장로가 말했다.

그 말에 검대원들이 봉급이나 영약을 받을 때 보다 더 큰 환호를 한 것은 덤이었다.

“난리 났네.”

그들도 사람인지라 술이 고플 것이고 기름진 음식이 고플 것이다.

허나 무인으로서 감내할 뿐.

그걸 이장로가 풀어버렸으니 좋게 말해 분위기가 불탔고, 정확히 말해 난장판이 돼버렸다.

잠시 환기라도 할 겸 상가 밖으로 나가니 무연이 기다렸다는 듯 따라온다.

“뭐야, 왜 같이 안 마시고 따라 나와?”

“호위가 술을 마시겠습니까. 저건 검대원 들을 위함이지 저를 위함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애초에 같은 검대쪽 아니야?”

내 말에 무연이 멈칫했다.

구가의 호위를 하는 무인 또한 검대 소속이다. 그럼 무연 또한 검대에 소속 돼 있을 무인이란 말이었다.

“저는……. 그….”

“뭐, 됐어. 거리나 좀 둘러볼까?”

곤란한 듯 말을 아끼기에 나도 말을 돌렸다. 괜히 파고 들을 만큼 궁금하지도 않았고, 더 물어볼 일도 아니었다.

“신월현이니 크기야 하겠지만, 역시 범위가 다르네.”

산서제일의 상가가 있는 만큼 거리도 구가가 있는 쪽과는 좀 더 활발했다.

특히 밤이 되었으니 낮엔 조용하던 주점들이 불을 켜고 있었다.

이정도의 거리 활성화면 무림맹이 있는 안휘나 중원 제일 상가가 있는 사천쪽과도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혹여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내 뒤에서 신경을 곤두세운 무연에겐 미안했지만, 나는 저잣거리에 나오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이 편안히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과거의 혈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고.

나 또한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겪었던 미래가 없던 일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으니.

“만두나 좀 살까?”

문득 위설아가 만두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위 시종 때문이시죠?”

내가 만두 얘길 꺼내니 무연이 위설아 얘길 꺼낸다.

“음, 굳이 그런 건 아닌데 사가면 다들 좋아할 거야.”

사는 김에 다른 이들 것까지 사가면 좋지 뭘. 내 말에 무연이 뭔가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역시 도련님은 소문과 전혀 다른 분이시네요. 사람을 소문으로만 믿으면 안 된다더니. 저는 더 배워야 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고작 만두 사 가는 거로 뭔 말을 하는 거야. 잠깐, 내 호위한 지 얼마 안 됐었나…?”

“이제 보름이 좀 안 됐죠.”

...회귀하기 얼마 전에 맡았나 보네. 그러니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거지.

이걸 무연이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내가 운이 좋다 해야할까.

무연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닥 기억에 없는 걸로 봐선 하루가 다르게 바뀌던 호위들처럼 얼마 안 가 바뀌었던 것 같았다.

“도련님 저기 만두파는 거 같은데요?”

잡생각중 무연에 말에 바라본 곳엔 김이 폴폴 건물이 보인다. 별로 입맛이 없던 나조차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파질 정도였다.

“저기가 좋겠네, 절로 가자.”

고민은 짧았다.

품에 전낭을 뒤지며 만둣집을 향하는 도중.

“아가씨, 이리 위험하게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여비는 걱정이 너무 많아, 듣기론 구룡회가 열린다 했잖아. 구가의 인원이 그렇게 많을 텐데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러니 더 불안합니다…. 혹 그러다 구 공자라도 만나게 되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 저 말은 하면 안 되는 말인데.

소녀가 말하기가 무섭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녀가 돌처럼 굳었다.

뒤에 있던 소녀의 호위인 여인도 경악하는 게 보였다.

어깨 치까지 오는 단발에 바둑알같이 까만 눈동자가 이색적이다.

이어 손에 끼고 있는 검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이지만, 그녀를 이미 알고있는 나로선 저 반지가 뭘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북팽가(河北彭家).

소녀는 중원 사대세가중 도검(刀劍)을 수련하는 하북의 명가의 혈족이자.

내 전 약혼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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