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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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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22회 작성일 24-09-2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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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검은패 (1)

검은패 (1)

“사고 쳤네….”

구룡전이 끝난 뒤 처소로 돌아오고 든 생각이다.

좆됐다. 아주 좆된 거 같다.

“이 등신 같은 놈, 왜 그랬지 대체.”

마무리로 뺨까지 맞고 풀썩 쓰러지던 구연서가 생각났다. 코피까지 줄줄 흐르던데….

나약한 몸이라 힘은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내공도 두르지 않았으니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했어.”

손속이 과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건 내 기준에서 더 맞았으면 맞았지 편히 넘길 말은 아니었다.

단지 구연서가 가진 신분을 망각했다.

구가가 주체한 축제에서 구가의 혈족을 수백의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체 그렇게 추하게 쓰러지게 뒀어야 했나.

진심으로 날 작살내려던 구연서야 어리니 그렇다 치더라도.

전생까지 합치면 구연서의 나이에서 두 배나 더 먹었을 내가 감정에 너무 휘둘렸다.

“그렇게까지 겪어놓고 아직도 철이 덜 들었지.”

아니 애초에 그 나이 먹고 날 거기 올려버린 이장로 탓이 아닐까?

...뭘 의문을 가져 그 노인네 탓이지.

-쏴아아아

귀를 간질이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스쳐 갔다.

겨울이 다 지났음에도 봄의 밤은 아직도 차갑다.

입고 있는 것이 얕은 무복임에도 추위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은 구염화륜공 덕이었다.

“엣취!”

짧은 재채기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무연과 위설아가 있었다.

무연이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이 위설아가 다가온다. 손에는 천을 잔뜩 들고 있었다.

“뭘 들고 있는 거야?”

“도련님…. 손….”

위설아에 말의 그제야 내 손을 확인했다.

껍질이 다 까져있었고 핏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구연서는 온몸에 내기를 두르고 있었으니,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채 후려쳐버린 영향이었나보다.

이미 단전에 내공을 품은 인간은 평범한 사람보다 재생이 빠르다, 이 정도 상처는 가만히 두면 금방 사라질 것이다.

“뭐 이런걸…. 이 정도는 괜찮….”

말할 틈 없이 위설아가 내 손을 천으로 감싼다. 어찌할 줄 몰라 빙빙 돌리기만 하는 것이 여전히 서툰 솜씨였다.

굳이 할 것이라면 직접 두르고 싶었지만, 위설아의 눈에서 뚝뚝 흐르는 눈물을 보니 차마 건들 수가 없었다.

이장로가 팽우진을 뚜드려 팰 때는 신나 보였는데, 고작 이정도 상처엔 이렇게 나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위설아에게 붕대도 감겨보고, 신기하네.’

훗날 천하제일인이 해주는 일이다. 나름 명예로운 일이 아닐까.

휙휙 감아대던 천은 내 손의 두 배치만큼 두꺼워 지고서야 멈췄다.

손인지 천 뭉친지 모를 것을 쓰다듬으며 위설아가 울먹거린다.

“도련님, 많이 아파요…?”

“원래 안 아팠는데, 이것 때문에 아플 거 같아.”

“안 아프단 거네요? 다행이다…….”

“...어 맞아.”

혹시 듣고 싶은 것만 듣는거니?

예상치 못한 산책을 조금 하고 밤길을 따라 잠시 걷다 처소로 돌아갔다.

구연서는 괜찮을까?

‘모르겠다.’

애써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와서 거의 남아있지도 않던 가족애 같은 게 생길 리는 없으니까.

구연서는 물론이고. 나도.

처소로 돌아가니 내 방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 사용인에게 물어보니 깜짝 놀라며.

‘어…? 미리 얘기되어있다 하셨는데….’

라며 순식간에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방안 인기척에 대체 누가 와있기에 이러나 싶어 문을 열어봤더니 그곳엔.

“오! 구 공자!”

미친놈…. 아니 팽우진이 앉아있었다.

******************

“반갑소, 나는 팽우진이라 하오.”

“알고 있습니다. 팽 소협.”

“친근하게 팽형이나, 우형이라 불러도 되오.”

“아뇨, 저희가 친하진 않아서….”

이 미친놈이 왜 여기에 있을까.

그리고 팽우진 옆에서 팽아희는 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걸까.

귀가 시뻘게진 걸 보니 어지간히 창피한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친근한 척을 하는 팽우진의 옷깃을 거칠게 집어 당기며 팽아희가 말했다.

“오라버니…. 우리가 사고 친 게 있으니 우선 사과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목소리가 창피함에 떨리는 게 느껴진다.

팽아희의 말에 팽우진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군…. 아무래도 파혼 관계니 아희는 두고 오는 게 맞았는데. 내 눈치가 너무 없었소.”

“어떡해…. 진짜 미친놈인가 봐.”

팽아희의 말에 동감했다.

자꾸 헛소릴 해대는 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팽아희가 말을 꺼넨다.

“미안해, 무례하게 말도 없이 밤늦게 찾아와서, 우리 미친놈…. 오라버니가 어떻게든 보러 가겠다는데 말릴 수가 없었어.”

“팽 소협이 나를?”

“우형이라 불러도 되오.”

“아뇨, 괜찮습니다.”

엮이기 싫어 이 양반아.

급히 시종을 시켜 타오게 만든 차가 식을 때까지 팽우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웃고 있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왜 이렇게 찾아오셨는지…?”

혹시 이장로가 사고 친 걸 나한테 따지려는 걸까? 조금은 아문 듯했으나, 팽우진의 한쪽 볼은 아직도 부풀어 있었다.

이장로에게 직격으로 맞은 곳이었다.

‘힘 조절했다더니….’

저게 어딜 봐서 힘 조절을 한 거지? 힘을 뭐 살짝이라도 더 주면 머리라도 터지나?

“....”

...왠지 진짜 그랬을 거 같아서 좀 무서웠다.

“저는 이장로님이 저지른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분명 그 양반 말렸습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오?”

어, 그 일 때문이 아닌가?

내가 의아해하니 팽우진이 말을 이었다.

“별일은 아니고 검봉의 동생이라고도 하고, 얼굴도 한 번 더 보고 싶으니 겸사겸사 찾아왔소.”

“저희 첫째 누님이랑 친하십니까?”

팽우진이 구희비랑 친했다는 얘긴 못 들어봤는데, 물론 나와 구희비도 딱히 친하진 않았다.

굳이 따지면 구연서보단 조금 나은 관계쯤?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검봉쪽은 모르겠군.”

‘그럼 안 친하겠네.’

구희비의 성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팽우진과 싸우면 싸웠지 친하게 지낼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얼굴도장도 찍을 겸 찾아왔소.”

“저한테 도장을 찍으셔서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별 능력도 없는데.”

세가에서 반쯤 내놓고 사는 놈한테 뭘 얻어가려고.

심지어 팽가와는 파혼을 한 번했던 터라 좋은 관계라 할 수는 없었다.

팽우진이 말했다.

“나는 구가에 재밌는 이가 검봉뿐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한 명이 더 있더군.”

날 지칭하는 건가.

재미? 뜬금없이 무슨 재미 타령이지.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계속 재미를 찾는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겠다.

‘일단 이상한 놈은 맞는 것 같은데.’

훗날에 있을 초고수들이 하나같이 정상인이 없던 걸 생각하면 떡잎부터 이렇다고 신기할 건 아니었다.

물론 엮이기 싫은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팽우진이 도제라 불릴 미래를 생각해서 인맥을 틔워두는 게 좋겠으나.

‘왠지 모르게 어려운 사람이야.’

그가 가진 알 수 없는 성격 탓인지 모르겠으나 참 어려운 사람이었다.

“도장을 찍으실 거면 다른 처소에 있을 누님한테 가서 찍는 게 나으실 겁니다. 저는 딱히 쓸모가 있는 쪽은 아니라서요.”

“지금 가봐야 못 볼 텐데…?”

“....지금 말고 내일이던 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아직 기절해 있으려나?

“나는 구 공자를 보러 온 것이오, 사실 구 소저는 딱히 관심 없기도 해서.”

“오라버니 제발 말부터 좀 걸러서 하시면 안 될까요?”

“음, 미안합니다. 내가 그런걸 잘 못 해서.”

세상에 이 인간을 어떻게 하면 좋지.

근래 들어 조금 진정됐던 두통이 다시 생길 것 같았다.

팽우진은 내 맘은 아는지 모르는지 품속에서 대뜸 검은색 패 하나를 꺼냈다.

“이건 내가 구 공자께 드리는 도장이오.”

“도장 말입니까?”

검은색 패에는 노란 문양으로 팽(彭)이라 적혀 있는 게 끝이었다. 겉모양은 딱히 대단해 보이진 않았으나 뭔가 중요한 걸 준 모양인지 팽아희가 화들짝 놀라 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걸 함부로 넘겨주는 게 말이 돼요?”

“뭐 어때, 나보고 쓰라고 준 건데. 누굴 주든 내 맘이겠지.”

“아니 그래도….”

“이게 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팽가의 손님임을 증명하는 패오, 이걸 들고 우리 세가를 찾으면 혈족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도로 가져가십시오….”

뭐 이런 부담스러운 걸 대뜸 넘기는 거야.

이걸 받게 되면 진짜 변명 없이 팽우진과 엮일 것 같았다.

“제가 아무래도, 그쪽 세가와 파혼 경력도 있다 보니….”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오.”

“오라버니, 제가 신경 쓰는데요?”

“부디 받아줬으면 좋겠소 구 공자.”

중간에 끼어 들은 팽아희에 말은 약과 먹듯 씹어 삼켜졌다. 사대세가와 좋은 인연을 쌓는 것이 안 좋을 리는 없을 터였으나.

팽우진이 왜 내게 대뜸 이러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다못해 지니고 계시다 저희 첫째 누님께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두 분 친하시다고….”

“이미 주려 했으나 검봉은 들은 체도 안 하더군, 이거 내가 생각해도 굉장한 물건인데…. 왜 안 받으려 하지?”

이미 까였구나! 제기랄.

“그럼 둘째 누님은?”

“나는 공자에게 관심이 있어서 주는 것이오.”

“...저 여자 좋아합니다. 팽 소협.”

“아, 물론 나도 여성을 좋아하오, 아닌가? 맞을 텐데.”

왜 의문인데 이 새끼야. 그렇게 말하니까 소름 끼치잖아.

내가 계속 완강히 거절을 표하자 팽우진이 아쉽다는 듯 패를 다시 품으로 가져갔다.

팽아희는 미친 오라비의 행동에 얼굴을 차마 못 들고 있었다.

다행이다 얘는 정상인 같네.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 그냥 눕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대련으로 몸을 너무 움직여서 그런가 피곤했다.

내 그런 몸 상태를 눈치챘는지 팽우진은 아쉬워하면서도 슬슬 가야 하는 것 같다며 몸을 일으킨다.

용건은 정말 이게 전부였나보다.

나가려던 팽우진이 내게 물었다.

“구 공자도 신룡관에 입관할 것이오?”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세가의 정파인으로 태어나 무림인으로서 살기 위해선 무림맹이 만든 신룡관을 한 번쯤 거쳐야 했다.

무공 같은 계열이야 세가나 문파에서 잘 가르칠 테니 관계없는 얘기겠으나.

마경문을 닫는 검대로 활동 하기 위해선 마물의 대한 대처와 지식을 위해 검관을 졸업해야 검대증이 발급된다.

사실상 검관이란게 신룡관만 있는 건 아니고 지역마다 있겠지만.

정파의 주측이 되는 문파나 세가는 무림맹에서 주관하는 신룡관으로 가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도망칠 방법을 진작부터 궁리 중이지만.’

입관 후 교육 기간이 무려 1년이다.

나는 1년의 세월을 함부로 버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그럼, 금방 내 후배가 되겠구만.”

팽우진이 방긋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친다. 혈연은 무리고 선물도 안 되니 학연을 노리는 것인가.

‘구연서한테 안 진 것도 모자라 너무 과하게 때린 게 문제였나, 왜 나한테 이렇게 집착하는 거야.’

여자가 했어도 썩 좋지 않았을 걸 다 큰 남자 놈이 이러니 아주 소름이 끼쳤다.

팽우진이 처소를 나가고 팽아희가 따라 나가다 멈칫하며 날 바라본다.

“넌 또 왜.”

“내가 너보다 누나랬잖아.”

“부르면 역겹다며, 뭐 어찌하라는 거야?”

팽아희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을 꺼낸다.

“미안했어.”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사과야.”

“...파혼하던 날 널 엎어치기하고 팔을 부러뜨린 거.”

“...그랬었나?”

그렇게 어마무시한 일을 당했었다고?

“내가 뭔 짓을 했길래 그렇게 무서운 일을 한 거냐….”

“나보고 첩의 자식이니 뭐니 했었지.”

“맞을 만했네.”

양쪽 다 부러졌어도 할 말 없을 일이었다. 오히려 사과하는 팽아희가 나한텐 의아해 보였다.

“사과 안 해도 괜찮아. 오히려 할 거면 내가 해야겠지, 그때는 미안했어.”

같은 서자 출신인데 누가 누구에게 뭐라고 했을까.

그냥 온전히 자격지심이었겠지.

내 사과를 받아주든 안 받아주든 팽아희의 몫이지만,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맑아진 것 같았다.

“잘 지내고.”

“너도 잘 지내, 그리고 오라버니가 준 게 언짢아도 좋은 마음으로 준 걸 테니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어.”

“뭘 줬다는 거지, 아까 그건 다시 돌려줬는…….”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다급히 품을 뒤지니 아까 팽우진이 품에 가져갔던 검은색 패가 손에 잡혀 나왔다.

‘대체 언제…!?’

팽우진이 내 어깰 툭툭 칠 때.

설마 그때 넣은 건가?

내가 그걸 떠올리곤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미친놈이네.”

결국, 한숨을 쉬며 패를 품 안에 다시 넣었다.

******************

구룡회가 3일째가 되던 날.

뒤풀이 겸 저잣거리에 축제가 벌어질 날이지만, 나는 세가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에 몸을 뉘었다.

구연서는 새벽에 이미 출발했다고 했다.

‘다행히 깨어난 건가.’

멀쩡히 정신을 차린 것은 다행이지만, 안 그래도 껄끄럽던 사인데 이젠 더 얼굴 보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준비가 다 끝나고 금방 마차가 출발했다.

좀 쉬려는데 자꾸 위설아가 졸음에 못 이겨 어깨에 기대려 든다.

재빨리 위설아를 다른 시종에게 대충 던져놓고 나도 수마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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