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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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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44회 작성일 24-09-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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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구룡회 (6)

구룡회(6)

구룡전이 시작할 무렵 팽아희는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이장로의 도움으로 팽우진을 제압한 것은 좋았으나, 팽우진은 일어나자마자 똑같이 돌아가지 않겠다 선언한 것이다.

볼이 찐빵마냥 부풀어 올라있는 팽우진은 일어나서 잠시 맹한 표정을 짓더니.

“이건 몰랐네.” 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팽우진은 약조는 틀리지 않았으니 수긍은 하겠다 말했다.

단지 여기까지 온게 억울하니 구룡전 만큼은 보고 갈것이라며 귀환을 거부했다.

팽우진은 엄연히 소가주다.

팽가의 가주와 장로들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며, 훗날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길 확실시된 사람이다.

팽아희는 물론이고 팽가의 수색대들 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였다.

“가긴 갈건데, 이것만 보고 갈게.”

“뭐가 그렇게 보고싶은 건데요.”

“억울하잖아...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못 보고 가는건.”

“억울하긴 뭘 억울해요! 그냥 검대를 뽑을 뿐이고 팽가에서도 지겹도록 하는 거잖아요. 그냥 빨리 세가로 돌아...”

“자꾸 그러면 나 염아권 대협한테 가서 따진다? 이건 말도 안되는 거 아니냐고 막 따질거야?”

팽아희는 팽우진의 땡깡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미친놈은 진짜 할거라고.

팽우진 입으로도 구룡전이 끝나면 얌전히 돌아가겠다 맹세했으니 이를 악물고 허락했다.

‘...그래, 하루쯤이야. 하루쯤은 괜찮지.’

그렇게 화를 식히며 구룡전이 벌어지는 대련장으로 팽우진을 데리고 왔다. 팽가의 무복을 본 천일상가 쪽에서 좋은 자리로 모시겠다 했으나.

팽우진이 이를 거부했다.

예기치 못한 방문인데 특혜까지 받을 수는 없다고 말이다.

결국, 일반석에 앉게 됐다. 팽가의 무복을 보고 힐끔힐끔 이쪽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시선과 무림인이기에 섣불리 말을 못 거는 이들로 반이 나뉘었다.

이 불편한 관심에 팽아희는 속이 더부룩했지만 팽우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언제 사 왔는지 만두까지 손에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오라버니…. 그건 또 언제 사 왔어요?”

“응? 아까 사 왔는데.”

“아까가 대체 언젠데요….”

아니 계속 옆에 있었던 거 같은데 대체 언제 사 온 거지?

팽우진은 하나부터 열까지 행동을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인으로서 재능은 장로들이 말하길 팽가 역사상 최고의 재능일 것이라 말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상한 사람임은 분명했다.

‘오죽하면 놀고 오겠다고 가출을 하겠어.’

그때를 생각했는지 팽아희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시작한다 아희야!”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팽우진은 손에 만두를 든 채로 환호할 뿐이다.

구룡전은 팽아희 입장에서 신기할 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사대세가 출신인 팽아희는 세가의 내로라 하는 무인들 틈에서 자랐다. 산골 중소 문파나 세가의 방계인들이 겨루는 게 마냥 신기하진 않을 것이었다.

물론 수십의 대련 중 눈에 띄는 이들도 몇 있었으나. 확 눈길을 끌 만한 이들은 아니었다.

팽아희는 와중에 팽우진을 보고 있었다.

흥미롭게 지켜보는 듯하면서도 뭔가 공허해 보이는 눈이다.

팽우진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왜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재미만을 추구하는지.

홀로 어디든 떠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소가주 자리는 불만 없이 받아들였는지.

언제든 떠날 것 같은 사람. 팽아희는 그게 참 불안했다.

가주가 팽아희에게 수색대와 함께 다녀오라는 말을 꺼냈을 때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 답했던 것은.

필시 그날 죄책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밤이 되었다. 구룡전의 모든 대련 또한 끝이 나 있었다.

“이제 가야죠. 오라버니.”

팽아희의 말에도 팽우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오라버니?”

왜 그런가 싶어 팽우진의 시선을 따라 보니 비어있는 중앙 대련장에 누군가 올라가 있었다.

“저 사람은….”

여자치고는 큰 키에 질끈 묶은 말총머리, 구가를 상징하는 붉은 도복.

‘구연서…. 라고 했었나.’

정파의 친목회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소녀였다. 그녀의 언니인 검봉은 두말할 것도 없는 기재였고 구연서 또한 못지않은 재능을 가졌다고 들었다.

곧이어 대련장에 구양천 또한 올라간다.

멀리서도 벌레라도 씹은 것 같은 불편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누가 봐도 ‘나 하기 싫어요.’라 적혀 있는 얼굴이었다.

“왜 저 녀석이 저길 올라가는 거지?”

“직계 대련을 한다나 봐.”

뭔 말인가 싶어 봤더니 팽우진에 손엔 이상한 종이가 들려있었다.

[구룡전이 끝난 후 구가의 찬란한 별들의 대련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그건 또 언제 받은 거에요?”

“들어올 때 나눠주던데?”

대체 언제?

팽아희가 다시금 대련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구양천과 구연서는 무언가 얘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거리가 멀어 들리지는 않았다.

내공을 둘러 청력을 키워봐도 마찬가지였다.

팽우진 말했다.

“안 들릴 거야 대련장 주위에 내기로 막이 둘려있어.”

“막이요?”

“저 정도 범위를 한 번에 둘러칠 정도면…. 염아권 대협께서 하신 일이겠군.”

팽아희는 구양천의 뭣 같은 표정을 이해했다. 아무리 봐도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구양천의 무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소년의 핏줄과 비교하면 한없이 보잘것없었다. 아마 구연서와 붙으면 처참하게 바닥을 구를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많은 군중 사이에서 그런 일을 겪게 되면 분명 팽아희는 목매달아 죽을 것이다.

팽아희는 한 번도 불쌍하다 생각해 본 적 없는 구양천이 지금은 좀 불쌍해 보였다.

두 사람이 여전히 대화를 나누던 중이지만 참관하던 이장로가 내공을 담아 소리친다.

그러자 구연서가 망설임 없이 구양천에게 뛰어들었다.

팽아희는 구연서의 속도에 눈이 번쩍 떠졌다.

‘빨라…!’

도약 속도에 맞춰 휘둘러지는 목검에 필요 이상의 흔들림이 없다. 중심을 받치고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였다.

한걸음 또 한걸음.

망설임 없이 이어지는 초식은 구연서가 얼마나 단련을 쉼 없이 해왔는지 얘기해주고 있었다.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다.

팽아희는 저 자리에서 매끄럽게 이어지는 구연서의 검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팽가의 혈족으로서 가져야 할 자부심이 조금씩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검봉의 동생이라고?”

팽아희는 문득 대련을 보고 있던 팽우진의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종일 공허함이 느껴지던 눈에 생기가 담긴 것이다.

팽아희는 그걸 보고 속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싫은 감정을 억눌렀다.

“...네, 구가네 혈족이니 검봉의 동생이겠죠.”

그래도 퉁명스러운 목소리까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구연서는 대단했다. 질투 날 정도로.

“저렇게 매끄러운 검격이라니 대단하죠…?”

“저 나이에 그러기 힘든데.”

“맞아요. 순간순간 내공을 다루는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저걸 다 피하고 있네.”

응?

팽아희는 팽우진의 대답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구연서가 뭘 피한 게 있었나?

애초에 구양천은 반격도 못 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팽아희는 다시금 팽우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시선을 따라가니 팽우진은 구연서가 아닌 구양천을 보고 있었다.

‘구연서를 보던 게 아니었어?’

대체 그럼 뭘 보고 그리 느끼는 걸까. 팽아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반 박자가 빨라.”

“네?”

“잘 봐, 검이 목적지에 닿기 반 박자 전에 움직이고 있어, 어딜 노리고 어떻게 휘두르는지 이미 알고 있는 거야.”

팽우진의 말을 듣고 그제야 구양천을 자세히 살펴봤다.

확실히 특이했다. 구양천의 몸놀림은 구연서 보다 한참이나 느리다.

구연서와 붙었다면 자신이 없겠지만.

자신이 구양천과 붙었다면 곧바로 벨 수 있을 속도였다.

‘그러네? 근데 어떻게…….’

구양천은 자신보다 느리고 구연서는 자신보다 빠르다.

진작에 승부가 났어야 했는데 두 사람은 열 합이 넘도록 대련을 하고 있었다.

“뭐지 대체.”

팽아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구연서는 승부수를 띄우고 싶은지 자세를 취했다.

구연서의 목검에 연한 내기가 맺히는 게 보였다.

일류 검수들이 사용하는 검기(劍氣)나.

절정에 이르러야 사용하는 검강(劍罡)과는 달랐다.

팽아희가 보기에도 심도 높은 내공이 응축되는 거 같았다.

그 모습에 팽우진이 단호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못쓰겠네.”

“왜요? 대단해 보이는데.”

“대단하지, 저 정도로 꾹꾹 눌러 담았으니, 내가 직접 받는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야.”

팽우진이 직접 받는다고 해도? 그 말에 팽우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래봤자 안 맞으면 그만이야, 익숙하지도 않은 걸 쓰려 하니 자세는 망가지고 호흡을 뒤틀렸어. 이미 조급함만으로 만든 동작 따윈 쓰레기만도 못해.”

당사자가 아닌 팽아희 조차 가슴이 싸늘해지는 냉철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대게 팽우진이 무공을 논하는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때였다. 구양천의 표정이 달라진 것이. 준비가 끝난 구연서가 거칠게 도약한다.

구양천은 그걸 보며 특별한 동작 따윈 취하지 않았다.

그저 한 발짝 뒤로, 그리고 고개를 살짝 움직인다.

그걸로 끝이었다. 한데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 구연서의 검격을 무마했다.

그리고.

-빠아악!

‘뭐지?’

팽아희는 분명 시선 한 번 돌린 적이 없다. 근데 무언가 부서뜨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연서가 주저앉아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대단해…!”

들뜬 목소리에 팽아희가 시선을 옮겼다. 팽우진이 몇 년 만에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구가엔, 검봉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정말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

-언니는 남자로 태어나야 했다.

열 살이 넘어갈 무렵의 구연서가 홀로 품었던 생각이다.

언니는 무(武)에 대한 재능은 물론이며 명가의 자제다운 품위를 지닌 사람이었다.

고작 열다섯. 자신과 같은 나이대에 언니는 검봉(劍鳳)이란 별호를 이었다.

사대세가와 구파일방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검봉의 별호를 언니가 이은 것이다.

너무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언니가 신룡관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왔을 무렵, 약관이 갓 넘은 나이에 구가의 오검대주로 발령을 받았다.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나 모두가 인정했다.

그럴만한 능력을 지녔으니 인정을 받은 것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더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구가의 가주는 되지 못한다.

구연서는 그때 자신의 남동생을 생각했다.

언니와 자신은 본처의 자식, 구양천은 첩의 자식이다. 하지만 구연서는 구양천의 어머니를 좋아했다.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구양천도 좋아했다. 첩인지 배다른 남매인지 신경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사라졌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어디로 사라졌나 찾아도 아버진 찾지 말라 명령을 내렸다.

아무도 세가에서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구양천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

가솔들에게 폭력적인 모습만 보이고 날 선 말과 눈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게으르고 나태해졌다. 이쁘장한 가솔들에게 손을 댄다는 소리도 들었다.

노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자격지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가주는 대대로 남자가 잇는다.

아버지는 그 이후 더는 첩을 들이지 않았고 아들은 구양천 뿐이니 이대로 가면 가주는 구양천이 될 것이다.

그리 뛰어난 언니를 두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 나를 두고.

언니는 남자로 태어나야 했다.

아니면 나라도 그랬어야 했다.

가진 것을 모른 채 배만 부른 구양천이 미웠다.

자신이 무엇을 가진지 모른 채 망가져만 가는 구양천이 혐오스러웠다.

‘뭐지?’

흐릿한 정신이 조금씩 돌아온다.

검에 구염화륜공을 몰아넣을 때쯤부터 기억 흐릿했다.

눈앞에 구양천이 서 있다. 자신보다 훨씬 작았을 구양천이 한참 커 보였다.

‘꿈인가?’

주르륵.

뭔가 흘러 코를 손등으로 닦으니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나는 왜 피를 흘리고 있지? 이건 꿈이 아닌가?

그럼 뭐지 왜 구양천이 이렇게 커졌지.

조금씩 뚜렷해지는 시야와 정신에 구연서는 모순을 알아챘다.

구양천이 커진 게 아니었다.

자신의 시야가 낮아진 것이다.

구연서는 대련장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대체…. 어떻게….”

“나는 누님을 이해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구연서가 고개를 들었다.

“마음에 안 들겠지, 이해해, 날 싫어해도 상관없어, 그걸로 뭐가 크게 달라지진 않거든.”

밝은 등불 탓에 구양천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구연서는 구양천의 눈동자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구양천의 눈은 무감각했다. 희열이나 분노 같은 확연한 감정 따윈 없었다.

그저 구연서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에 구연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떨리는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누님이 했던 말은 굉장히 좆같지만, 그것도 이해할게.”

내가 뭐라고 했었지? 구양천의 말에 구연서는 자신이 뱉은 말을 떠올렸다.

‘차라리 사라지지 그랬어, 네 어미처럼.’

심장이 차게 식는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었어도 그건 분명, 해선 안 될 말이었다.

뭐라 해야 할까. 이제라도 사과를 구해야 할까? 와중에 구양천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구연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양천은 말을 이었다.

“이해해줄 테니, 누님도 내가 이러는 걸 이해해줘.”

그게 무슨 말이냐 물을 수 없었다.

구연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구양천의 손바닥이었다.

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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