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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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9-21 12:48 조회 515 댓글 0본문
EP.28 악취. (1)
악취 (1)
숙소에서 밤을 지내고서 아침이 밝았다.
굳이 따지자면 새벽이었으나 이른 출발을 위해 이 시간 즈음에 일어나야 했다.
찌뿌드드한 몸을 펴며 밖으로 나오니 마침 옆에서 위설아가 사용인들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정신을 못 차리길래 다가가서 약하게 땅콩을 날렸다.
“아얏…!”
“눈 떠, 얼른 내려가서 세수하고.”
“아파여어어…….”
“엄살은. 세상에 나보다 늦게 일어나는 시종이 어디 있어.”
“언니들이 나만 안 깨우고 갔어요….”
“알아서 일어나야지.”
“힝, 죄송해요….”
위설아가 조마조마한 발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출발 준비는 얼마나 걸리려나 대충 두 시경쯤 걸릴까.
끼이익.
옆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문에서 나오는 것은 남궁천준이었다.
놈은 미리 준비를 다 끝낸 것인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치니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인사라도 해야 하나? 정말 잠깐 고민했다. 어제 일도 있고 하니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되려 놈이 날 째려보고 뭐라 말을 하려 하는데.
그 옆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남궁비아가 튀어나온다.
남궁천준이 그걸 보고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 어제 만났던 사근사근한 미공자 그 자체였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구 소협, 긴 밤 편안하셨습니까.”
“.....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탄사밖에 없었다. 이 색다른 미친놈은 뭐지?
속으로 미친놈 취급하던 팽우진이 떠올라 그에게 미안해졌다.
팽우진은 미친놈이어도 사람은 착해 보였는데.
이 새끼는 그냥 미친놈인 데다 나쁜 새끼가 분명했다.
남궁비아는 우릴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둘이 있냐는 표정이었다.
“일어나서 나오다 우연히 구 소협과 만났습니다. 누님도 방금 일어났나 보군요.”
“아…. 맞아….”
“조금 있으면 출발해야 하니 누님께서도 준비하시죠, 방으로 사용인을 보내겠습니다.”
“...응.”
남궁천준은 혹시 내가 뭔 말을 할까 끊고 들어오는 것이 일품이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남궁비아가 짧게 하품을 하더니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러자 남궁천준이 곧바로 날 째려본다.
이어 말을 덧붙였다.
“어제 한 경고, 머릿속에 담아두도록.”
그리 말하곤 놈은 날 지나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훗날 뇌검이 될 남궁천준이라는 인간이 원래 저런 놈이었나? 남궁비아가 머리가 획 돌아서 자기 손으로 남궁을 지워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차세대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정의와 협의를 지킨다며 높게 평가받던 사내였는데.
하여튼 남궁성 씨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가주든 장로든. 하물며 자식들까지도.
최소한, 내가 봤던 일들만 따져봐도 그랬다.
‘저런 상태인데 사대세가의 중심이라니, 말세야 말세….’
고개를 돌리질 치곤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이미 구가의 사용인들이 모여 있었다.
무연이 내려오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도련님, 식사하시겠습니까?”
“음…. 딱히 안 끌리는데.”
“만두가 맛있답니다.”
“그럼 좀 먹어야겠다.”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만두가 나온다.
위설아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다른 시종들에게 머리를 맡긴 상태였다.
“설아는 머릿결도 좋네.”
“어려서 그런 거 아닐까? 나도 어릴 때는 머릿결 좋았는데….”
“뭐래, 너 완전 개털 머리라 개동 오빠가 머리로 빗자루질해도 되겠다 했었잖아.”
“그 얘기 하지 마, 저번에도 그 얘기 하길래 얼굴 한 번 긁어줬어.”
“...어쩐지 얼굴에 흉터 났길래 물어봤더니 고양이가 긁었다고 하던데, 너였구나?”
“홍와 언니 개털이에요?”
“어허, 설아야 그런 말 배우면 안 돼.”
쓸데없는 잡담이다. 와중에도 위설아는 반쯤 졸고 있었다.
...근데 손에는 자연스럽게 만두가 들려있네? 자면서도 먹는 건가 설마.
나도 따라서 만두를 하나 집어 먹었다.
방금 찐 것이 역시 맛있었다.
드르륵.
만두를 먹고 있는데 옆에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남궁비아가 어느새 나타나 옆자리에 착석했다.
니가 왜 거기 앉는데…?
“...소저 앉으실 곳이 여기가 아니라 저기 같은데요.”
바로 맞은편엔 남궁의 이들이 모여 앉아있다.
근데 왜 저기로 안 가고 내 옆자리에 앉고 지랄이지.
그 탓에 저 미친 남궁 아들놈이 나를 불타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잖아.
남궁비아는 아는지 모르는지 만두를 하나 집길래 내가 곧바로 젓가락으로 차단했다.
“소저, 이 만두는 제겁니다. 아니 그건 그거고, 왜 여기 앉으셨냐니까요?”
“...그냥 가까운데 앉았는데….”
“동생분 시선이 되게 뜨겁거든요?”
“...?”
남궁비아가 내 말에 남궁천준쪽을 보는데 그사이 표정 관리를 했는지 남궁 아들놈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진짜 소름 돋는 놈일세.’
아니 연기를 할 거면 전체로 하지 왜 나한테만 지랄일까. 내가 뭐 찍힐 만한 짓이라도 했나.
남궁비아는 뭐가 문제냐는 듯 나를 다시 보기에 그냥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뒀다.
근데 만두는 건들지 말라고 이 년아….
마지막 만두까지 입속에 욱여넣고 대충 일어났다.
남궁비아의 시선이 내 입에 들어가던 만두에 꽂혀있던 것 같았지만 뭐 어쩔거야.
어지간히 처량한 모습이었는지 어느새 위설아가 만두를 들고 나타나 남궁비아에게 건넨다.
동글이 먹보가 음식을 건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자기가 먹어도 부족할 텐데 말이다.
이어 만두를 결국 얻어낸 남궁비아가 위설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위설아도 해맑게 한 번 웃더니 내 근처에 와서 착석했다.
자기 잘했냐는 듯 나한테도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 들이밀기에 콩 하고 때렸다.
“으갹!”
“뭘 잘했다고 칭찬해달래!”
“배고픈 사람한테 밥을 주는 건 착한 일이라고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너 말고 줄 사람 많은 사람이야! 가서 만두나 더 먹어.”
“넹….”
시무룩한 걸음으로 다시 돌아가더니 시종들 틈에서 만두를 먹는다.
그걸 보고 한숨을 푹 쉬고 있자니 무연이 다가왔다.
“도련님, 일다경 뒤쯤에 출발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출발하네. 준비는 다 끝났데?”
“예, 식사가 끝나는 대로 물품을 싣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도착했을 때 늦은 오후쯤이나 됐을 것 같다.
그럼 다행히 딱 예상에 알맞게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럼 우선 갈 준비를….”
말을 하다 무연이 이상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게 보였다.
왜 저러나 싶더니 옆에서 남궁비아가 집요하게 무연의 검을 보고 있었다.
진짜 이 정도면 광기가 맞았다.
“...남궁 소저, 그거 안 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만 좀 쳐다보세요. 그러다 사람 체하겠습니다.”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연에게 빨리 가보라고 했다.
무연은 내게 예를 취하곤 평소보다 반걸음 빠르게 사라졌다.
“아니 많고 많은데 왜 자꾸 무연한테 집착하십니까.”
“강한 검수라서…. 대련하면 많이 배울 것 같아서….”
“그러면 저기서 미친 듯이 째려보는 소저 동생이랑 하면 되지 않습니까.”
“천준이는….”
남궁비아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녀가 뒷말을 삼키는 모습이 의아했다.
뇌룡 정도면 강하지 않나? 스치듯 봐도 당장 구연서나 구절엽과 비교해서 한 두 단계 위에 있었다. 무연과 비교하면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남궁천준은 내가 구절엽과 대련할 때처럼 억지로 절기를 사용한다 해도 이길 수 없을 위치였다.
문득 의문이 하나 들었다.
남궁비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는 왜 알려지지 않았지?’
마검후는 절세의 검수다.
마인이기 이전에 검술로는 검마(劍魔)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갔을 정도니까.
그런 이가 지금 나이대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을 리는 없고.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아무리 못해도 저기 날 죽일 듯 보고 있는 남궁 놈 보다 딸리진 않을 것 같다.
그런 그녀가 얻은 최초이자 최후의 별호는 다름 아닌 마검후다.
강자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시절이 지금부터 한참 뒤에 있다는 얘긴데.
...어찌 된 일일까. 후기지수에도 급이 있다지만 오룡삼봉에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그럼 궁금해하지 말아야지.”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저는 드시던 만두나 마저 드시고,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여관 밖으로 발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위설아가 따라온다. 손에는 먹으려는지 만두가 두 개나 들려있다.
“두 개나 먹으려고? 먹으면서 움직이면 체할지도 모른다.”
“하나는 도련님 거!”
“그건 좀 좋은 생각이네.”
사이좋게 만두를 먹으며 마차로 향했다.
위설아를 따라 뭘 자꾸 집어먹다 보니까 나도 먹는 양이 늘어난 것 같다.
옆구리 점점 뭔가 살이 잡히는 것이 수련양을 더 늘려야 할 것 같았다.
******************
남궁비아는 밖으로 나가는 구양천과 위설아의 등을 계속 지켜봤다.
눈길이 때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신에게 의문을 품으면서 답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순간 남궁비아는 악취를 느꼈다.
코를 가리고 싶지만, 가린다고 사라질 향기가 아님을 남궁비아는 알고 있었다.
“누님.”
남궁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옮겨 자신의 동생을 쳐다봤다.
짙다. 전부 악취다. 어째서 자신의 동생은 저렇게 견디기 힘든 악취를 풍기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아버지도, 장로도, 심지어 동생까지도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
동생은 자신에게 모난 짓을 하지 않고 잘 대해주지만, 남궁비아는 그런데도 자신의 속에서 점차 커지는 감정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이는 핏줄에 대한 죄책감인가 아니면 오로지 그들에 대한 혐오인가.
‘...도망치고 싶어.’
악취가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저희는 다 저쪽에 있는데, 뭣 하러 여기 앉으셨습니까.”
남궁천준이 묻는다.
모여 있는 곳이 냄새가 더 심하니까.
남궁비아는 차마 이유를 똑바로 뱉을 수는 없었다.
“...그냥 여기가 가까워서.”
“이러시면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앉으시지요.”
“응…. 미안해.”
웃어주는 남궁천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만, 속에서 뭔가 막힌 듯했다.
도망치고 싶다.
‘어디로?’
남궁비아는 스스로 물었다. 문득 구양천이 떠오른다.
우연히 마주친 그의 주위에는 놀랍게도 어떠한 악취도 없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다.
무연이라는 남자도, 구가의 사람들도 조금의 악취는 나고 있었지만, 구양천의 옆에 가면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구양천에게 느껴지는 자신에 대한 짜증이나 문득 주려는 거리감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되려 그것조차 편안하게 느껴진다.
남궁비아는 지금처럼 그의 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느껴지는 이 역겨움을 점점 견디기가 힘들었다.
벌떡 일어나 발길을 옮긴다.
“누님…. 어디 가십니까?”
“마차…. 먼저 가서 쉬고 있을게.”
남궁비아는 동생을 뒤로한 체 빠른 발걸음으로 구양천을 따라나섰다.
이윽고 홀로 남은 남궁천준은 밖으로 나가는 남궁비아를 보곤 표정을 바꿨다.
착한 동생을 연기하던 얼굴에서 웃음기 하나 없는 싸늘한 얼굴로 돌아왔다.
“뭐가 문젤까.”
뚝-뚝.
손가락에서 들리는 뼛소리, 남궁천준의 습관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방해꾼은 딱 질색인데 말이야.”
소리가 멈추고, 이윽고 남궁천준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뒤돌아선 남궁천준의 싸늘한 눈에 담긴 것은 분명 살기였다.
악취 (1)
숙소에서 밤을 지내고서 아침이 밝았다.
굳이 따지자면 새벽이었으나 이른 출발을 위해 이 시간 즈음에 일어나야 했다.
찌뿌드드한 몸을 펴며 밖으로 나오니 마침 옆에서 위설아가 사용인들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정신을 못 차리길래 다가가서 약하게 땅콩을 날렸다.
“아얏…!”
“눈 떠, 얼른 내려가서 세수하고.”
“아파여어어…….”
“엄살은. 세상에 나보다 늦게 일어나는 시종이 어디 있어.”
“언니들이 나만 안 깨우고 갔어요….”
“알아서 일어나야지.”
“힝, 죄송해요….”
위설아가 조마조마한 발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출발 준비는 얼마나 걸리려나 대충 두 시경쯤 걸릴까.
끼이익.
옆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문에서 나오는 것은 남궁천준이었다.
놈은 미리 준비를 다 끝낸 것인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치니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인사라도 해야 하나? 정말 잠깐 고민했다. 어제 일도 있고 하니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되려 놈이 날 째려보고 뭐라 말을 하려 하는데.
그 옆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남궁비아가 튀어나온다.
남궁천준이 그걸 보고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 어제 만났던 사근사근한 미공자 그 자체였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구 소협, 긴 밤 편안하셨습니까.”
“.....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탄사밖에 없었다. 이 색다른 미친놈은 뭐지?
속으로 미친놈 취급하던 팽우진이 떠올라 그에게 미안해졌다.
팽우진은 미친놈이어도 사람은 착해 보였는데.
이 새끼는 그냥 미친놈인 데다 나쁜 새끼가 분명했다.
남궁비아는 우릴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둘이 있냐는 표정이었다.
“일어나서 나오다 우연히 구 소협과 만났습니다. 누님도 방금 일어났나 보군요.”
“아…. 맞아….”
“조금 있으면 출발해야 하니 누님께서도 준비하시죠, 방으로 사용인을 보내겠습니다.”
“...응.”
남궁천준은 혹시 내가 뭔 말을 할까 끊고 들어오는 것이 일품이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남궁비아가 짧게 하품을 하더니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러자 남궁천준이 곧바로 날 째려본다.
이어 말을 덧붙였다.
“어제 한 경고, 머릿속에 담아두도록.”
그리 말하곤 놈은 날 지나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훗날 뇌검이 될 남궁천준이라는 인간이 원래 저런 놈이었나? 남궁비아가 머리가 획 돌아서 자기 손으로 남궁을 지워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차세대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정의와 협의를 지킨다며 높게 평가받던 사내였는데.
하여튼 남궁성 씨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가주든 장로든. 하물며 자식들까지도.
최소한, 내가 봤던 일들만 따져봐도 그랬다.
‘저런 상태인데 사대세가의 중심이라니, 말세야 말세….’
고개를 돌리질 치곤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이미 구가의 사용인들이 모여 있었다.
무연이 내려오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도련님, 식사하시겠습니까?”
“음…. 딱히 안 끌리는데.”
“만두가 맛있답니다.”
“그럼 좀 먹어야겠다.”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만두가 나온다.
위설아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다른 시종들에게 머리를 맡긴 상태였다.
“설아는 머릿결도 좋네.”
“어려서 그런 거 아닐까? 나도 어릴 때는 머릿결 좋았는데….”
“뭐래, 너 완전 개털 머리라 개동 오빠가 머리로 빗자루질해도 되겠다 했었잖아.”
“그 얘기 하지 마, 저번에도 그 얘기 하길래 얼굴 한 번 긁어줬어.”
“...어쩐지 얼굴에 흉터 났길래 물어봤더니 고양이가 긁었다고 하던데, 너였구나?”
“홍와 언니 개털이에요?”
“어허, 설아야 그런 말 배우면 안 돼.”
쓸데없는 잡담이다. 와중에도 위설아는 반쯤 졸고 있었다.
...근데 손에는 자연스럽게 만두가 들려있네? 자면서도 먹는 건가 설마.
나도 따라서 만두를 하나 집어 먹었다.
방금 찐 것이 역시 맛있었다.
드르륵.
만두를 먹고 있는데 옆에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남궁비아가 어느새 나타나 옆자리에 착석했다.
니가 왜 거기 앉는데…?
“...소저 앉으실 곳이 여기가 아니라 저기 같은데요.”
바로 맞은편엔 남궁의 이들이 모여 앉아있다.
근데 왜 저기로 안 가고 내 옆자리에 앉고 지랄이지.
그 탓에 저 미친 남궁 아들놈이 나를 불타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잖아.
남궁비아는 아는지 모르는지 만두를 하나 집길래 내가 곧바로 젓가락으로 차단했다.
“소저, 이 만두는 제겁니다. 아니 그건 그거고, 왜 여기 앉으셨냐니까요?”
“...그냥 가까운데 앉았는데….”
“동생분 시선이 되게 뜨겁거든요?”
“...?”
남궁비아가 내 말에 남궁천준쪽을 보는데 그사이 표정 관리를 했는지 남궁 아들놈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진짜 소름 돋는 놈일세.’
아니 연기를 할 거면 전체로 하지 왜 나한테만 지랄일까. 내가 뭐 찍힐 만한 짓이라도 했나.
남궁비아는 뭐가 문제냐는 듯 나를 다시 보기에 그냥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뒀다.
근데 만두는 건들지 말라고 이 년아….
마지막 만두까지 입속에 욱여넣고 대충 일어났다.
남궁비아의 시선이 내 입에 들어가던 만두에 꽂혀있던 것 같았지만 뭐 어쩔거야.
어지간히 처량한 모습이었는지 어느새 위설아가 만두를 들고 나타나 남궁비아에게 건넨다.
동글이 먹보가 음식을 건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자기가 먹어도 부족할 텐데 말이다.
이어 만두를 결국 얻어낸 남궁비아가 위설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위설아도 해맑게 한 번 웃더니 내 근처에 와서 착석했다.
자기 잘했냐는 듯 나한테도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 들이밀기에 콩 하고 때렸다.
“으갹!”
“뭘 잘했다고 칭찬해달래!”
“배고픈 사람한테 밥을 주는 건 착한 일이라고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너 말고 줄 사람 많은 사람이야! 가서 만두나 더 먹어.”
“넹….”
시무룩한 걸음으로 다시 돌아가더니 시종들 틈에서 만두를 먹는다.
그걸 보고 한숨을 푹 쉬고 있자니 무연이 다가왔다.
“도련님, 일다경 뒤쯤에 출발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출발하네. 준비는 다 끝났데?”
“예, 식사가 끝나는 대로 물품을 싣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도착했을 때 늦은 오후쯤이나 됐을 것 같다.
그럼 다행히 딱 예상에 알맞게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럼 우선 갈 준비를….”
말을 하다 무연이 이상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게 보였다.
왜 저러나 싶더니 옆에서 남궁비아가 집요하게 무연의 검을 보고 있었다.
진짜 이 정도면 광기가 맞았다.
“...남궁 소저, 그거 안 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만 좀 쳐다보세요. 그러다 사람 체하겠습니다.”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연에게 빨리 가보라고 했다.
무연은 내게 예를 취하곤 평소보다 반걸음 빠르게 사라졌다.
“아니 많고 많은데 왜 자꾸 무연한테 집착하십니까.”
“강한 검수라서…. 대련하면 많이 배울 것 같아서….”
“그러면 저기서 미친 듯이 째려보는 소저 동생이랑 하면 되지 않습니까.”
“천준이는….”
남궁비아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녀가 뒷말을 삼키는 모습이 의아했다.
뇌룡 정도면 강하지 않나? 스치듯 봐도 당장 구연서나 구절엽과 비교해서 한 두 단계 위에 있었다. 무연과 비교하면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남궁천준은 내가 구절엽과 대련할 때처럼 억지로 절기를 사용한다 해도 이길 수 없을 위치였다.
문득 의문이 하나 들었다.
남궁비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는 왜 알려지지 않았지?’
마검후는 절세의 검수다.
마인이기 이전에 검술로는 검마(劍魔)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갔을 정도니까.
그런 이가 지금 나이대에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을 리는 없고.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아무리 못해도 저기 날 죽일 듯 보고 있는 남궁 놈 보다 딸리진 않을 것 같다.
그런 그녀가 얻은 최초이자 최후의 별호는 다름 아닌 마검후다.
강자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시절이 지금부터 한참 뒤에 있다는 얘긴데.
...어찌 된 일일까. 후기지수에도 급이 있다지만 오룡삼봉에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그럼 궁금해하지 말아야지.”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저는 드시던 만두나 마저 드시고,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여관 밖으로 발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위설아가 따라온다. 손에는 먹으려는지 만두가 두 개나 들려있다.
“두 개나 먹으려고? 먹으면서 움직이면 체할지도 모른다.”
“하나는 도련님 거!”
“그건 좀 좋은 생각이네.”
사이좋게 만두를 먹으며 마차로 향했다.
위설아를 따라 뭘 자꾸 집어먹다 보니까 나도 먹는 양이 늘어난 것 같다.
옆구리 점점 뭔가 살이 잡히는 것이 수련양을 더 늘려야 할 것 같았다.
******************
남궁비아는 밖으로 나가는 구양천과 위설아의 등을 계속 지켜봤다.
눈길이 때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신에게 의문을 품으면서 답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순간 남궁비아는 악취를 느꼈다.
코를 가리고 싶지만, 가린다고 사라질 향기가 아님을 남궁비아는 알고 있었다.
“누님.”
남궁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옮겨 자신의 동생을 쳐다봤다.
짙다. 전부 악취다. 어째서 자신의 동생은 저렇게 견디기 힘든 악취를 풍기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아버지도, 장로도, 심지어 동생까지도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
동생은 자신에게 모난 짓을 하지 않고 잘 대해주지만, 남궁비아는 그런데도 자신의 속에서 점차 커지는 감정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이는 핏줄에 대한 죄책감인가 아니면 오로지 그들에 대한 혐오인가.
‘...도망치고 싶어.’
악취가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저희는 다 저쪽에 있는데, 뭣 하러 여기 앉으셨습니까.”
남궁천준이 묻는다.
모여 있는 곳이 냄새가 더 심하니까.
남궁비아는 차마 이유를 똑바로 뱉을 수는 없었다.
“...그냥 여기가 가까워서.”
“이러시면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앉으시지요.”
“응…. 미안해.”
웃어주는 남궁천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만, 속에서 뭔가 막힌 듯했다.
도망치고 싶다.
‘어디로?’
남궁비아는 스스로 물었다. 문득 구양천이 떠오른다.
우연히 마주친 그의 주위에는 놀랍게도 어떠한 악취도 없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다.
무연이라는 남자도, 구가의 사람들도 조금의 악취는 나고 있었지만, 구양천의 옆에 가면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구양천에게 느껴지는 자신에 대한 짜증이나 문득 주려는 거리감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되려 그것조차 편안하게 느껴진다.
남궁비아는 지금처럼 그의 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느껴지는 이 역겨움을 점점 견디기가 힘들었다.
벌떡 일어나 발길을 옮긴다.
“누님…. 어디 가십니까?”
“마차…. 먼저 가서 쉬고 있을게.”
남궁비아는 동생을 뒤로한 체 빠른 발걸음으로 구양천을 따라나섰다.
이윽고 홀로 남은 남궁천준은 밖으로 나가는 남궁비아를 보곤 표정을 바꿨다.
착한 동생을 연기하던 얼굴에서 웃음기 하나 없는 싸늘한 얼굴로 돌아왔다.
“뭐가 문젤까.”
뚝-뚝.
손가락에서 들리는 뼛소리, 남궁천준의 습관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방해꾼은 딱 질색인데 말이야.”
소리가 멈추고, 이윽고 남궁천준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뒤돌아선 남궁천준의 싸늘한 눈에 담긴 것은 분명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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