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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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9-21 12:47 조회 498 댓글 0본문
EP.27 마검후(魔劍后). (4)
마검후(魔劍后). (4)
남궁비아와 불편한 동행 아닌 동행을 한 지 이틀이 더 지났다.
앞으로 정말 조금만 있으면 예정했던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정비를 한 뒤에 당가를 향해 출발하겠지.
예상했던 사천행보단 훨씬 안전하게 도착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궁비아를 마주했던 날을 제외하고도 마물과 몇 번 마주쳤으나, 위협이 될만한 존재는 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열흘에 가까웠을 사천행이었다.
하지만 기간이 길어 지루했을 뿐,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다는 의미다.
“후우….”
다만 어떻게 보면 큰 문제가 하나 생겨있긴 했다.
보기만 해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법한 광경에 나는 계속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언니 저거 봐요! 청설모예요!”
“...응”
“언니는 청설모 먹어봤어요?”
“응……. 응? 아, 아니.”
어느새 마차에서 내린 위설아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남궁비아의 옆에 딱 붙어 재잘재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의 위설아가 말을 걸고 남궁비아가 짧게 대답해주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남궁비아도 싫지는 않은지 위설아의 속도에 맞춰서 걸어가고 있었다.
맹한 표정으로 중간중간 이상한 길로 빠지려는 남궁비아의 옷깃을 위설아가 잡아끈다.
“...쟤네 대체 왜 친한 거지?”
외인에게 다가가지 말라 그리 계속 말했지만 위설아는 불쌍하다며 계속 남궁비아에게 접근했다. 대체 뭐가 불쌍하다는 걸까.
한 번쯤 호통이라도 쳤어야 했을까?
“쯧.”
뭐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저 둘이 친하게 붙어있는 모습을 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무연.”
“예, 도련님.”
“앞으로 얼마나…. 많이 피곤해? 얼굴색이 왜 그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얼굴이 거무죽죽해서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구먼.
무연이 저리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남궁비아였다.
첫날 남궁비아가 멀리 야영을 하던 날, 대뜸 무연에게 다가가더니 남궁비아는 대련을 청했다.
무연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를 거절했다.
‘저는 도련님의 호위입니다. 호위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은 다른 곳에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한 거절에 남궁비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집착이 생긴듯한 눈으로 무연을 계속 지켜봤다.
정확히는 무연이 아니라 무연의 검을 지켜봤다.
결국, 새벽 가까이 시선에 시달리던 무연은 잠을 좀 설쳤는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몰골이 되었다.
일류 무인인 무연이 밤에 잠 좀 안 잤다고 저럴 리는 없고. 심적으로 힘들어서 그런 건가?
‘저 미친 것은 이때부터 이미 저 성격이었네.’
자기의 성에 차는 흥미로운 검수만 만나면 물불 안 가리고 검부터 뽑아 들던 광년.
오죽하면 전생에 가장 많이 하던 일이 검제와 검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일이었을까.
지금은 무작정 검부터 뽑아 들진 않는 것 같지만, 떡잎부터 다르다고 내가 보기엔 지금도 미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위설아가 옆에 붙어서 참새처럼 짹짹거리고 있어서 좀 덜한 것 같으나 당장 아까도 무연의 검 쪽을 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사실 위설아는 그걸 알고 붙은 게 아닐까?
‘그럴 리는 없지.’
무얼 알고 위설아가 그럴까.
그럴 리는 없었다. 둘이 붙어있는 게 일단 당장 나쁜 건 없을 것 같으니 조용히 있기로 했다.
어차피 마을만 도착하면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안 엮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쪽잠을 잠깐 잘 생각이었다.
며칠 내내 야영과 수련을 반복해서 그런가?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무연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련님, 목적지가 보입니다.”
드디어 산서에서 떠나온 지 칠주야만에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
뻐근한 몸을 풀고 마차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앞으로 하루 정도면 당가에 도착할 수 있기에 일행의 피로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지나쳐 가서 도착하고 쉬는 게 낫지 않냐 싶지만.
도착할 때 당가의 이들이 마중을 나올 것이기에 몸가짐을 단정히 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튼 명가의 겉치레란 귀찮기 그지없는 것이다.
“방은 있을지 모르겠네.”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선 항상 숙소를 잡는 게 불편했다.
인원이 다수인 것은 물론이고 하물며 세가의 이름도 안 먹히는 지역이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위설아가 뭔가 발견했는지 뒤에 멍하니 있던 남궁비아의 옷깃을 쭉쭉 당긴다.
“언니! 저기 언니랑 같은 옷을 입고 있어요!”
“...아.”
위설아에 말에 따라 남궁비아는 물론 내 시선까지 위설아가 가리킨 방향을 향했다.
홀로 거칠게 여행했던 탓에 먼지 끼고 헤진 남궁비아의 무복과 달리 깔끔한 청색 무복, 그리고 아랫단에 적힌 남궁.
안휘의 주인이자 정파 명문세가를 대표하는 제일 명가의 이들이었다.
저들은 분명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발견했듯, 남궁세가의 이들 또한 우리를 발견했는지 놀란 얼굴이다.
대뜸 그 틈에서 누군가 남궁비아에게 달려왔다.
“누님…!?”
내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다.
맹한 성격을 제외한다면, 함부로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차갑게 생긴 남궁비아.
그녀가 딱 남자였음 저렇게 생겼겠다 싶은 소년이었다.
남궁비아가 소년을 보며 살짝 손을 흔들었다.
“안녕…. 천준아.”
“누님 대체 어디로 사라졌다 오시는 겁니까! 세가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다녔는지는 아십니까?”
“미안해…. 길을 잃어서.”
남궁비아의 말에 남궁천준이 손으로 제 이마를 감싼다.
“제가 그래서 밧줄로 묶고 가자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밧줄이요?
뭔 개도 아니고 사람을 밧줄로 묶고 가…?
‘저 수준의 길치라면 그럴 만한 것 같기도 하고….’
남궁비아가 답했다.
“...그건 좀 창피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예, 그래서 출발하고 하루도 안 돼서 사라지셨습니까? 걱정 말라고 이번엔 길 안 잃는다고 했던 거 누님입니다.”
“...미안.”
남궁천준의 싸늘한 말에 남궁비아가 꼬리를 내렸다.
그제야 멀뚱멀뚱 구경하던 우릴 발견했는지 남궁천준이 급히 예를 갖춘다.
“남궁세가의 남궁천준이라고 합니다.”
역시, 이 소년은 뇌검(雷劍)이었다.
훗날 무림오검이라 불리며 정파를 대표하는 검수가 될 소년이었다. 그럼 아마 지금쯤이면….
“구가세가의 구양……. 구절엽이라고 합니다. 혹시 뇌룡….”
생각해보니 남궁비아에게 해둔 말이 있어 급히 이름을 바꿔 말했다.
내 물음에 남궁천준이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잘생긴 새끼가 얼굴을 붉히니 뭔가 좀 짜증 난다.
“...부끄럽게도 과분하게 그리 불리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곤 있으나 어투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들어있었다.
오룡삼봉(五龍三鳳).
현 후기지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여덟 명을 중원에선 그리 불렀다.
이 중에선 내 첫째 누나인 검봉 구희선 또한 들어가 있었다.
뇌룡 남궁천준, 나보다 두 살이 많던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다.
뭔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니.
옆에서 위설아가 가자미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다.
아마 이름을 다르게 말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
머리 위에 물음표가 잔뜩 떠 있는 거 같길래 조용히 하라고 슬쩍 표시를 보냈다.
그래도 눈치는 조금 있는가 우선 입을 다무는 듯했다.
남궁천준이 내게 물었다.
“이런, 구가의 무인이셨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쩌다 저희 누님과 동행을 하게 되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저년이 대뜸 마물을 몰고 나타나더니 길을 잃었다며 막무가내로 따라왔어요.
“우연히 길을 잃으셨다 하여 잠시 동행했을 뿐입니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을 좀 돌려 뱉어야 했다.
이번엔 남궁비아가 가자미눈을 뜨고 쳐다본다.
오늘 길에 만두 처먹은 값이 있으니 쟤도 입 좀 다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런 눈치까진 없는지 남궁비아가 끝내 입을 연다.
“아닌데…. 동행 아니라했….”
“자, 남궁 소저, 지금까지 즐거웠습니다. 다음엔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하시지요.”
물론 그걸 끝까지 말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그걸 보던 남궁천준이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희 누님을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당병전회에 참석하시는 겁니까?”
“아, 예…. 뭐.”
내가 긍정하자 남궁비아가 움찔한다.
사천에 가지 않는다고 했던 것 탓인가? 근데 뭐 어찌할 거야, 내가 싫었다는데.
“그럼 숙소는 잡으셨는지요, 저희가 사례 드릴 건 당장 없으나 잡은 숙소에 방이 많습니다. 마침 당병전회를 위해 저희도 당가로 향하니 같이 가시지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렸는지. 남궁천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권한다.
‘...아니 나는 일단 저 미친것이랑 엮이기 싫어.’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 왔으면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대충 남궁비아가 사천으로 향한다기에 당병전회를 위해 가는 거라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근데 뭣 하러 혈족이 둘이나?
뇌룡이건 남궁비아건, 둘 다 가주의 직계일 텐데 뭐하러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아무튼, 딱 여기까지야.’
애초에 목적도 있고 남궁비아와는 여기서 끊어야 했다. 숙소야 분명 찾아보면 나올 것이다.
마침 무연이 숙소를 찾았는지 내게 다가온다. 나는 곧바로 남궁천준에게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는 아무래도 다른 숙소를 잡을….”
“도련님…. 주위에 빈방이 없다 합니다. 마차를 끌고 계곡이라도 다시 찾아볼까요…?”
“...려고 했지만, 그리 권해주시니 어쩔 수가 없네요. 신세 좀 지겠습니다. 남궁 소협.”
.....시발 인생.
*
숙소를 못 구했으면, 마차에서 그냥 자는 게 낫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야영을 한 번 더 뛰기엔 같이 온 사용인들이 문제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반쯤 핑계고 나 또한 야영에 조금 지쳐있는 것이 남은 빈틈의 진실이었다.
남궁천준은 숙소까지 안내해주자마자 남궁비아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뜩 화난 남궁천준의 얼굴과 물려올 잔소리에 힘껏 겁먹은 남궁비아의 얼굴이 비교돼서 더 불쌍해 보이지만.
남궁비아의 업보이니 바로 신경을 껐다.
조금 의아한 게 있다면, 둘의 관계였다.
언뜻 봐도 딱히 나빠 보이지 않는 남매 관곈데.
나는 전생의 마검후를 떠올리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검후가 마인으로 처음 행한 일은 다름 아닌 수백의 마인들을 끌고 남궁세가를 지도상에서 지우는 것이었다.
세가의 가주는 물론이고 장로들, 심지어는 사용인들까지 모조리 죽인 것으로 마인으로써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저 모습은 뭘까.
나는 전생의 남궁비아와 크게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다른 마인들과도 마찬가지다.
서로서로 자신의 목적과 바람을 위해 마인이 되어 천마 아래로 기어들어 간 거지, 동료의식 따윈 가지지 않았다.
그 탓에 남궁비아가 가진 배경 따윈 알지 못한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말이다.
우선 좀 피곤했기에 방에서 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니 계단을 타고 가는데 앞에서 아까 올라갔던 남궁비아가 내려오고 있었다.
“...아.”
나와 눈이 마주친 남궁비아가 조심스럽게 예를 취했다. 그 모습에 내가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내 당황은 뒤로한 체 남궁비아가 말한다.
“여기까지 안내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구 소협.”
“...소저가 일방적으로 따라오신 거긴 합니다만.”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뇨 안 볼건데요.
잔소리를 한껏 들은 지 평소보다 울적한 티가 나는 남궁비아가 날 스쳐 간다.
다시 올라가려니 남궁천준이 날 보고 있었다.
나는 숙소를 빌려준 것이 고마웠기에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려 했다.
“아, 남궁 소협….”
한데 남궁천준은 내 말은 듣지도 않는지 날 스쳐 가며 툭 어깨를 치고 간다.
툭!
그리고 계단 한 칸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제를 알아야지.”
남궁천준의 목소리가 아까 그 따뜻하던 목소리와는 다르다. 훨씬 냉담해진 목소리였다.
“한 번 넘어가 주려 했더니 주제를 모르는구나. 네까짓게 감히 누님에게 말을 걸지 말란 말이다.”
마주친 눈빛에서 작게 살기까지 느껴졌다.
“한 번은 넘어가 줄 테니 또 한 번 이런 일이 내 눈에 보이면 네 놈의 목을 곧바로 썰 것이다.”
남궁천준은 그리 말하더니 계단을 타고 남궁비아를 쫓아간다.
그 모습에 나는 화가 나기보단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역시 죄다 미친 새끼들이었어.’
조금 정상인가 싶었지만 전생을 통틀어 남궁 성씨중에 정상인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역시 저놈도 마찬가진가보다.
저 미친놈들이랑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진 순간이었다.
마검후(魔劍后). (4)
남궁비아와 불편한 동행 아닌 동행을 한 지 이틀이 더 지났다.
앞으로 정말 조금만 있으면 예정했던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정비를 한 뒤에 당가를 향해 출발하겠지.
예상했던 사천행보단 훨씬 안전하게 도착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궁비아를 마주했던 날을 제외하고도 마물과 몇 번 마주쳤으나, 위협이 될만한 존재는 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열흘에 가까웠을 사천행이었다.
하지만 기간이 길어 지루했을 뿐,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다는 의미다.
“후우….”
다만 어떻게 보면 큰 문제가 하나 생겨있긴 했다.
보기만 해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법한 광경에 나는 계속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언니 저거 봐요! 청설모예요!”
“...응”
“언니는 청설모 먹어봤어요?”
“응……. 응? 아, 아니.”
어느새 마차에서 내린 위설아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남궁비아의 옆에 딱 붙어 재잘재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의 위설아가 말을 걸고 남궁비아가 짧게 대답해주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남궁비아도 싫지는 않은지 위설아의 속도에 맞춰서 걸어가고 있었다.
맹한 표정으로 중간중간 이상한 길로 빠지려는 남궁비아의 옷깃을 위설아가 잡아끈다.
“...쟤네 대체 왜 친한 거지?”
외인에게 다가가지 말라 그리 계속 말했지만 위설아는 불쌍하다며 계속 남궁비아에게 접근했다. 대체 뭐가 불쌍하다는 걸까.
한 번쯤 호통이라도 쳤어야 했을까?
“쯧.”
뭐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저 둘이 친하게 붙어있는 모습을 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는데.
“무연.”
“예, 도련님.”
“앞으로 얼마나…. 많이 피곤해? 얼굴색이 왜 그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얼굴이 거무죽죽해서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구먼.
무연이 저리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남궁비아였다.
첫날 남궁비아가 멀리 야영을 하던 날, 대뜸 무연에게 다가가더니 남궁비아는 대련을 청했다.
무연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를 거절했다.
‘저는 도련님의 호위입니다. 호위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은 다른 곳에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한 거절에 남궁비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집착이 생긴듯한 눈으로 무연을 계속 지켜봤다.
정확히는 무연이 아니라 무연의 검을 지켜봤다.
결국, 새벽 가까이 시선에 시달리던 무연은 잠을 좀 설쳤는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몰골이 되었다.
일류 무인인 무연이 밤에 잠 좀 안 잤다고 저럴 리는 없고. 심적으로 힘들어서 그런 건가?
‘저 미친 것은 이때부터 이미 저 성격이었네.’
자기의 성에 차는 흥미로운 검수만 만나면 물불 안 가리고 검부터 뽑아 들던 광년.
오죽하면 전생에 가장 많이 하던 일이 검제와 검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일이었을까.
지금은 무작정 검부터 뽑아 들진 않는 것 같지만, 떡잎부터 다르다고 내가 보기엔 지금도 미친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위설아가 옆에 붙어서 참새처럼 짹짹거리고 있어서 좀 덜한 것 같으나 당장 아까도 무연의 검 쪽을 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사실 위설아는 그걸 알고 붙은 게 아닐까?
‘그럴 리는 없지.’
무얼 알고 위설아가 그럴까.
그럴 리는 없었다. 둘이 붙어있는 게 일단 당장 나쁜 건 없을 것 같으니 조용히 있기로 했다.
어차피 마을만 도착하면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안 엮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쪽잠을 잠깐 잘 생각이었다.
며칠 내내 야영과 수련을 반복해서 그런가?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무연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련님, 목적지가 보입니다.”
드디어 산서에서 떠나온 지 칠주야만에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
뻐근한 몸을 풀고 마차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앞으로 하루 정도면 당가에 도착할 수 있기에 일행의 피로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지나쳐 가서 도착하고 쉬는 게 낫지 않냐 싶지만.
도착할 때 당가의 이들이 마중을 나올 것이기에 몸가짐을 단정히 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튼 명가의 겉치레란 귀찮기 그지없는 것이다.
“방은 있을지 모르겠네.”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선 항상 숙소를 잡는 게 불편했다.
인원이 다수인 것은 물론이고 하물며 세가의 이름도 안 먹히는 지역이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위설아가 뭔가 발견했는지 뒤에 멍하니 있던 남궁비아의 옷깃을 쭉쭉 당긴다.
“언니! 저기 언니랑 같은 옷을 입고 있어요!”
“...아.”
위설아에 말에 따라 남궁비아는 물론 내 시선까지 위설아가 가리킨 방향을 향했다.
홀로 거칠게 여행했던 탓에 먼지 끼고 헤진 남궁비아의 무복과 달리 깔끔한 청색 무복, 그리고 아랫단에 적힌 남궁.
안휘의 주인이자 정파 명문세가를 대표하는 제일 명가의 이들이었다.
저들은 분명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발견했듯, 남궁세가의 이들 또한 우리를 발견했는지 놀란 얼굴이다.
대뜸 그 틈에서 누군가 남궁비아에게 달려왔다.
“누님…!?”
내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다.
맹한 성격을 제외한다면, 함부로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차갑게 생긴 남궁비아.
그녀가 딱 남자였음 저렇게 생겼겠다 싶은 소년이었다.
남궁비아가 소년을 보며 살짝 손을 흔들었다.
“안녕…. 천준아.”
“누님 대체 어디로 사라졌다 오시는 겁니까! 세가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다녔는지는 아십니까?”
“미안해…. 길을 잃어서.”
남궁비아의 말에 남궁천준이 손으로 제 이마를 감싼다.
“제가 그래서 밧줄로 묶고 가자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밧줄이요?
뭔 개도 아니고 사람을 밧줄로 묶고 가…?
‘저 수준의 길치라면 그럴 만한 것 같기도 하고….’
남궁비아가 답했다.
“...그건 좀 창피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예, 그래서 출발하고 하루도 안 돼서 사라지셨습니까? 걱정 말라고 이번엔 길 안 잃는다고 했던 거 누님입니다.”
“...미안.”
남궁천준의 싸늘한 말에 남궁비아가 꼬리를 내렸다.
그제야 멀뚱멀뚱 구경하던 우릴 발견했는지 남궁천준이 급히 예를 갖춘다.
“남궁세가의 남궁천준이라고 합니다.”
역시, 이 소년은 뇌검(雷劍)이었다.
훗날 무림오검이라 불리며 정파를 대표하는 검수가 될 소년이었다. 그럼 아마 지금쯤이면….
“구가세가의 구양……. 구절엽이라고 합니다. 혹시 뇌룡….”
생각해보니 남궁비아에게 해둔 말이 있어 급히 이름을 바꿔 말했다.
내 물음에 남궁천준이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잘생긴 새끼가 얼굴을 붉히니 뭔가 좀 짜증 난다.
“...부끄럽게도 과분하게 그리 불리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곤 있으나 어투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들어있었다.
오룡삼봉(五龍三鳳).
현 후기지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여덟 명을 중원에선 그리 불렀다.
이 중에선 내 첫째 누나인 검봉 구희선 또한 들어가 있었다.
뇌룡 남궁천준, 나보다 두 살이 많던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다.
뭔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니.
옆에서 위설아가 가자미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다.
아마 이름을 다르게 말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
머리 위에 물음표가 잔뜩 떠 있는 거 같길래 조용히 하라고 슬쩍 표시를 보냈다.
그래도 눈치는 조금 있는가 우선 입을 다무는 듯했다.
남궁천준이 내게 물었다.
“이런, 구가의 무인이셨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쩌다 저희 누님과 동행을 하게 되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저년이 대뜸 마물을 몰고 나타나더니 길을 잃었다며 막무가내로 따라왔어요.
“우연히 길을 잃으셨다 하여 잠시 동행했을 뿐입니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을 좀 돌려 뱉어야 했다.
이번엔 남궁비아가 가자미눈을 뜨고 쳐다본다.
오늘 길에 만두 처먹은 값이 있으니 쟤도 입 좀 다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런 눈치까진 없는지 남궁비아가 끝내 입을 연다.
“아닌데…. 동행 아니라했….”
“자, 남궁 소저, 지금까지 즐거웠습니다. 다음엔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하시지요.”
물론 그걸 끝까지 말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그걸 보던 남궁천준이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희 누님을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당병전회에 참석하시는 겁니까?”
“아, 예…. 뭐.”
내가 긍정하자 남궁비아가 움찔한다.
사천에 가지 않는다고 했던 것 탓인가? 근데 뭐 어찌할 거야, 내가 싫었다는데.
“그럼 숙소는 잡으셨는지요, 저희가 사례 드릴 건 당장 없으나 잡은 숙소에 방이 많습니다. 마침 당병전회를 위해 저희도 당가로 향하니 같이 가시지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렸는지. 남궁천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권한다.
‘...아니 나는 일단 저 미친것이랑 엮이기 싫어.’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 왔으면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대충 남궁비아가 사천으로 향한다기에 당병전회를 위해 가는 거라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근데 뭣 하러 혈족이 둘이나?
뇌룡이건 남궁비아건, 둘 다 가주의 직계일 텐데 뭐하러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아무튼, 딱 여기까지야.’
애초에 목적도 있고 남궁비아와는 여기서 끊어야 했다. 숙소야 분명 찾아보면 나올 것이다.
마침 무연이 숙소를 찾았는지 내게 다가온다. 나는 곧바로 남궁천준에게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는 아무래도 다른 숙소를 잡을….”
“도련님…. 주위에 빈방이 없다 합니다. 마차를 끌고 계곡이라도 다시 찾아볼까요…?”
“...려고 했지만, 그리 권해주시니 어쩔 수가 없네요. 신세 좀 지겠습니다. 남궁 소협.”
.....시발 인생.
*
숙소를 못 구했으면, 마차에서 그냥 자는 게 낫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야영을 한 번 더 뛰기엔 같이 온 사용인들이 문제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반쯤 핑계고 나 또한 야영에 조금 지쳐있는 것이 남은 빈틈의 진실이었다.
남궁천준은 숙소까지 안내해주자마자 남궁비아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뜩 화난 남궁천준의 얼굴과 물려올 잔소리에 힘껏 겁먹은 남궁비아의 얼굴이 비교돼서 더 불쌍해 보이지만.
남궁비아의 업보이니 바로 신경을 껐다.
조금 의아한 게 있다면, 둘의 관계였다.
언뜻 봐도 딱히 나빠 보이지 않는 남매 관곈데.
나는 전생의 마검후를 떠올리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검후가 마인으로 처음 행한 일은 다름 아닌 수백의 마인들을 끌고 남궁세가를 지도상에서 지우는 것이었다.
세가의 가주는 물론이고 장로들, 심지어는 사용인들까지 모조리 죽인 것으로 마인으로써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저 모습은 뭘까.
나는 전생의 남궁비아와 크게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다른 마인들과도 마찬가지다.
서로서로 자신의 목적과 바람을 위해 마인이 되어 천마 아래로 기어들어 간 거지, 동료의식 따윈 가지지 않았다.
그 탓에 남궁비아가 가진 배경 따윈 알지 못한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말이다.
우선 좀 피곤했기에 방에서 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니 계단을 타고 가는데 앞에서 아까 올라갔던 남궁비아가 내려오고 있었다.
“...아.”
나와 눈이 마주친 남궁비아가 조심스럽게 예를 취했다. 그 모습에 내가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내 당황은 뒤로한 체 남궁비아가 말한다.
“여기까지 안내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구 소협.”
“...소저가 일방적으로 따라오신 거긴 합니다만.”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뇨 안 볼건데요.
잔소리를 한껏 들은 지 평소보다 울적한 티가 나는 남궁비아가 날 스쳐 간다.
다시 올라가려니 남궁천준이 날 보고 있었다.
나는 숙소를 빌려준 것이 고마웠기에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려 했다.
“아, 남궁 소협….”
한데 남궁천준은 내 말은 듣지도 않는지 날 스쳐 가며 툭 어깨를 치고 간다.
툭!
그리고 계단 한 칸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제를 알아야지.”
남궁천준의 목소리가 아까 그 따뜻하던 목소리와는 다르다. 훨씬 냉담해진 목소리였다.
“한 번 넘어가 주려 했더니 주제를 모르는구나. 네까짓게 감히 누님에게 말을 걸지 말란 말이다.”
마주친 눈빛에서 작게 살기까지 느껴졌다.
“한 번은 넘어가 줄 테니 또 한 번 이런 일이 내 눈에 보이면 네 놈의 목을 곧바로 썰 것이다.”
남궁천준은 그리 말하더니 계단을 타고 남궁비아를 쫓아간다.
그 모습에 나는 화가 나기보단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역시 죄다 미친 새끼들이었어.’
조금 정상인가 싶었지만 전생을 통틀어 남궁 성씨중에 정상인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역시 저놈도 마찬가진가보다.
저 미친놈들이랑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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