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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에 진심인 편

컨셉에 진심인 편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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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7회 작성일 24-09-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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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은 태어날 때부터 배우 수저를 물고 자란 아이였다.

김유련의 딸로 태어나 일찍 연예계를 접한 소녀.

마음만 먹는다면 여러 군데에서 CF를 찍을 수도 있었지만.

어린 아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 김유련은 원하지 않았다.

'딱 적당한 선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꺄르륵 박사님!>은 딱 김유련이 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시청대와 과도하지 않고 딱 적절한 관심.

부담과 압박이 없는 현장 분위기.

차차 연예계에 익숙해질 발판 중에 이보다 더 좋은 여건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생각보다 수진이가 더 빨리 적응했다는 것.

피는 못 속이는 건지 자신의 딸은 빠르게 <꺄르륵 박사님!>을 장악했다.

수많은 아역들 사이에서 중심이 될 정도의 존재감.

자신의 딸에겐 그런 재능이 있었다.

근데 최근 딸에게 정말 아이스러운 면모가 보였다.

매일 어른스러워서 너무 빨리 세상을 아는 거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엄마! 나 안 예뻐?'

'응? 무슨 소리야, 우리 딸이 제일 예쁘지.'

'근데 걘 왜 나 안 좋아할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예쁜데.'

'우리 수진이를 안 좋아해? 누가?'

이때만 해도 김유련은 괴롭힘을 당하는가 싶어 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

그러나.

'동후!'

'동후?'

'응, 내 짝궁인데. 손 잡고 싶은데, 맨날 뭐라 하면서 안 잡아줘.'

'그래? 뭐라고 하는데?'

'내가 귀찮데...'

'그럼 울 공주님도 상대 안 해주면 되는 거 아냐?'

'안 돼.'

'안 돼? 왜?'

'동후 진짜 엄청 잘생겼어.'

그 사건의 내막을 알자마자 김유련은 폭소를 참지 못 했다.

어디 가서 공주 대접 받는 게 일상인 자신의 딸이 첫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외모에 푹 빠져서!

'우리 딸이 잘생긴 사람들 엄청 많이 봐서 내성이 강할텐데.'

갓난 아기 시절부터 많은 배우들과 만났던 자신의 딸인 만큼.

당연히 수준 높은 외모를 많이 봐왔을텐데.

그걸 다 무시하고 '진짜 엄청 잘생겼다'란 이야기가 나온다라.

호기심이 들었고, 그 호기심은 금방 풀렸다.

'보인다.'

아직 앳된 모습 속에 강렬한 아우라가 보인다.

단순히 얼굴 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걷는 자세부터 시작해서 호흡을 하는 모양.

손을 두는 위치와 얌전하게 주변을 기다리는 자세.

그리고 당돌한 언변과 빛나는 눈동자.

김유련은 눈 앞의 소년이 연예계에서 모든 걸 집어 삼키는 미래를 목격했다.

그래서 살짝 건드려봤다.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싶어서.

근데 이게 웬걸?

"우아아아아앙!"

그거 조금 건드렸다고 냅다 자신의 딸을 울려버렸다.

이런 수작 부리지 말라고 하듯이 말이다.

게다가.

"울지마."

울릴 땐 언제고 이젠 부드럽게 손을 잡아주며 다독여주기까지.

"응...큽...흥..."

근데 또 자신의 딸은 거기에 홀라당 넘어가 울음을 뚝 그쳤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래 뭐 여기까진 그럴 수 있지.'

그럼 프로그램 안에선 어떨까.

카메라가 돌 때와 돌지 않을 때.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자연스럽던 사람도 딱딱하게 만드는 게 카메라였으니까.

'<꺄르륵 박사님!>은 정글 같은 프로그램이니까.'

<꺄르륵 박사님!>은 아이들 위주의 프로그램인만큼.

메인 MC의 개입이 매우 적었다.

실제로 꺄르륵 박사님의 대사는 극히 적었으며, 인형탈까지 입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개인전을 하는 상황에서 권위 있는 심판 하나가 있는 느낌.

그 정글 같은 곳에서 저 아이는 어떤 재능을 보여줄까.

김유련은 매우 궁금해졌다.

+++++

"오늘 아이 하나 새로 온 거 아시죠? 동후라고."

"동후? 동후..."

빙글빙글.

<꺄르륵 박사님!>의 박사 역을 맡고 있는 박창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아, 아 그? 그 수진이 남친?"

"네네, 맞아요."

꺄르륵 박사님은 그 역할에 걸맞에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기에.

박창진을 포함한 몇몇 작가들은 김동후란 아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수진이가 전부 알려줬기 때문이다.

"어떻게 회의에서 잘 됐나 보네요?"

"...같은 자리 계셨잖아요?"

"전 어차피 발언권이 크게 없어서, 그냥 딴 생각 좀 하고 있었죠."

"아무튼 오늘은 체조 위주니까 금방 끝나겠네요."

"아, 맞다. 1부 짧게 하고 2부 교양 지식 좀 넣자고 했죠?"

"네네."

작가의 답을 들으며 박창진은 인형탈을 썼다.

-자 그럼 우리 모두 다같이 꺄르륵 박사님을 불러볼까요?

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스튜디오에서 스텐바이 신호가 들어온다.

'근데 아무리 잘생겨도 어차피 프로그램 안에선 비슷하지 않나?'

스튜디오로 들어가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짬'은 무시할 수 없었다.

괜히 사회가 경력직을 좋아하겠는가.

이러다가 나중엔 경력직 신입이라는 끔찍한 혼종이 나타날 지도 몰랐다.

그때 되면 나도 이거 그만하려나.

그리 중얼거리며 박창진이 스튜디오로 들어갔을 때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애들이 왜 안 놀고 있지?'

보통 <꺄르륵 박사님!>은 오프닝을 아이들만 따로 놓고 진행한다.

서로 자기 소개를 하고, 가벼운 일상 대화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함이다.

근데 오늘따라 분위기가 조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활발한 분위기긴 하지만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고 해야 하나.

아이들 밖에 없는 공간에 긴장감이 왜 있지?

의문을 가지려는 찰나 박창진의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고.

'허.'

그 순간 그 원인을 파악했다.

방금 막 들어온 미꾸라지가 온 강물을 자기 땅으로 만들고 있었다.

+++++

박창진이 들어오기 전.

"내가 잘 안내해줄게."

프로그램 오프닝 전 단계부터 김수진은 동후 옆에 바짝 붙었다.

아무래도 처음 카메라 앞에 서는 만큼 긴장 되는 건 당연했으니 말이다.

근데.

"그냥 자기 소개하고 놀면 되는 거 아냐?"

"어, 어?"

"내가 가장 늦게 들어왔으니, 먼저 소개 하면 되는 거지?"

꾸벅 인사.

"저는 김동후라고 합니다. 무지개 유치원 출신이고, 수진이 짝궁입니다. 좋아하는 건 쑥쑥이 체조입니다."

밝고 명랑한 톤과 방긋방긋 웃는 얼굴.

거기에 촬영 감독의 카메라 안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 동선까지.

김동후는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모든 걸 완벽히 수행했다.

누가 보면 TV 프로그램 여러 번 출연한 줄 알 정도로.

사실 이건 김동후가 가진 특전 때문이었다.

천의 재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밝게 빛나게 만들었으니.

프로그램을 잘 찍는 재능이 곧장 개화한 거였다.

허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나머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의 부모인 이유현까지도 말이다.

'우리 애가... 저런 재능이 있었나?'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알 길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다.

그녀는 이런 방면에 문외한이었지만 확실한 건 하나 알 수 있었다.

'진짜 다르다.'

존재감이 달랐다.

땜빵 출연으로 들어왔기에 서있는 위치가 맨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시선이 쏠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위치 수정으로 인해 중앙 자리 선점.

원래 그랬다는 듯 당연하게 중앙에서 프로그램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에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특히 방송 업계에 몸을 오래 담은 김유련은 경악하고 있었다.

아역 배우는 아무리 높게 쳐줘도 결국 아역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누구나 다 올챙이 시절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개구리를 이길 수 없는 노릇이었고, 그런 부분에서 자신의 딸은 개구리였다.

근데.

갑자기 그보다 더한 황소 개구리가 나타난 격이었다.

자신의 딸, 김수진이 이제 막 프로가 되려는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면.

'그냥 프로잖아.'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건 카메라를 의식하고 안 하고의 차이였다.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의식하기에 어색했고.

프로는 카메라가 없는 듯 카메라 안에서 놀기에 자연스럽다.

이 차이는 매우 컸으며, 그건 경력이 낮을 수록 더 티가 나기 마련이다.

'이건 영모 PD가 실수했네.'

낙하산으로 아이 하나 넣은 거? 문제 없었다.

근데 그 낙하산이 너무 큰 미꾸라지였다.

"나, 나는 전상무라고 해..."

"어, 나, 나느,은!"

그나마 자신의 핏줄을 이은 수진이를 제외하곤.

모두가 어색해한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자연스레 말을 하던 아이들의 말이.

국어책처럼 느껴진다.

원래도 그런 감이 있었지만.

프로 하나가 등장하자 저절로 비교가 되니 그 정도가 심하게 보이는 거였다.

"너, 너는 뭐 좋아해?"

"나? 난 다 좋아하긴 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독서 좋아해."

너 다섯살 맞아? 말솜씨가 왜 그래.

모두가 김동후를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애늙은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성숙한 단어 선택.

새로 들어온 아이의 텃세 같은 게 일어나기도 전.

김동후는 그 존재감만으로 모두를 위축시켰다.

그렇게 살짝 쳐진 분위기로 오프닝이 끝나고.

-자 그럼 우리 모두 다같이 꺄르륵 박사님을 불러볼까요?

♪♩♬

밝은 음악과 함께 본격적인 프로그램 진행이 시작 된다.

"꺄르륵 박사님! 나와주세요!"

"꺄르르륵! 요홋! 나는 세상 모든 재미를 알고 있는 꺄르륵 박사님라네!"

이런 상황에서 MC이자 꺄르륵 박사님인 박창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듣자 하니 새로운 친구가 왔다더구나? 그럼 오늘 이 꺄르륵 박사님과 함께 새로운 춤을 한 번 춰볼까요호호?"

"네, 좋아요!"

굳이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 이대로 밀고 나간다.

뒤쳐진 아이들을 신경 쓰다간 아예 촬영이 망가질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속전속결로 간다.

'수진이랑 동후 투톱으로 끝낸다.'

다행이 오늘은 체조 몇 가지만 하면 끝났기에 이 순간만 잘 넘기면 문제 없었다.

"제 체조를 잘 보고 따라하면 키가 쑤욱쑥! 몸이 건강건강! 해진답니다!"

♪♩♬♪♪♩♩

노래와 함께 체조가 시작 된다.

"꺄르륵! 자자 처음이라서 어려울 수도 있지만 박사님과 함께라면 쉽답니다!"

체조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반쯤은 춤이기도 했다.

너무 체조 같기만 하면 보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말 극한의 순한 맛으로 이루어진 춤.

근데 이 정도 난이도만 돼도 어린 애들한텐 꽤 고난이도였다.

아니, 고난이도였어야만 했다.

'...왜 다른 애들은 율동인데, 너 혼자 안무를 하고 있냐?'

김동후가 여기서 또 한 번 진흙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쉬운 동작이라고 해도 다섯살들한텐 낯선 것들이다.

모든 게 서툰 나이인데, 새로 배운 체조를 갑자기 어떻게 잘하겠는가.

근데 김동후는 잘하고 있었다.

한 번 본 체조를 무슨 안무 딴 것 마냥 똑같이 움직인다.

그야말로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

<꺄르륵 박사님!> 1부가 끝난 후.

'재미있긴 하네.'

확실히 정신은 그대로여도 몸 자체는 어린 애여서 그런지.

율동만 들어도 몸이 절로 들썩거리고 들뜨게 됐다.

"우리 아들 재미있었어?"

"네."

스튜디오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엄마가 날 끌어안는다.

"어때, 재미있었어?"

이 말을 한 건 우리 엄마가 아닌 김영모 PD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눈을 반짝이면서 나와 눈높이를 맞춰주는데.

솔직히 좀 부담스럽고 징그러웠다.

"네,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감사합니다, 피디님."

"하하 뭘, 그럼 이제 앞으로 우리 자주 보는 거지?"

이미 내 대답을 들은 것처럼 환하게 웃는 김영모 PD.

"네? 아뇨 저 이거 안 할래요."

재미있다고 했지 더 한다고는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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